나는 ‘영업맨’이다. 내 직업은 고달프다. 하루 평균 5시간30분을 잔다. 자정에 잠을 청하면 어김없이 새벽 5시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전날 술을 마셨다고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음날 고객과의 중요한 미팅이 예정돼 있다. 고객과 주 2회 이상은 꼭 술자리를 한다. 가족 행사, 동창, 친구들 모임까지 합치면 거의 매일 ‘술’에 찌들어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달 휴대폰 사용료는 평균 20만원 안팎이다. 하루 평균 200통화는 훌쩍 넘는 듯하다. 매일 오후가 되면 휴대폰 배터리는 ‘간당간당’한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 충전기만 있으면 충전을 하는 버릇도 생겼다.
휴대폰이 마치 생명과도 같다. 새벽 알람시계 소리는 듣지 못해도 휴대폰 벨소리가 단 한 번만 들려도 정신이 퍼뜩 난다. 세상 모든 휴대폰 벨소리가 내 벨소리 같다. 휴대폰을 놓고 나오면 퀵서비스로 집에서 사무실까지 배달도 시킨다. 아무도 휴대폰 벨소리를 듣지 못했다는데 나에게만 들리는 환청현상도 간혹 경험한다.
양복은 약 7벌 정도 있다. 매일 똑같은 양복을 입고 고객을 만날 수 없는 노릇이다. 구두도 마찬가지다. 4~5켤레는 기본이다.
주요 관리 고객은 약 400~500명 수준이다. 이들에게 연락을 하고 메일을 보내는 등 ‘특별한’ 접선을 시도해야 한다.
타고 다니는 차량은 매달 50만~60만원어치의 기름을 잡아먹는다. 기름 먹는 하마다. 새 차로 바꾼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2만㎞를 달렸다. 접대비도 엄청 든다. 월 평균 70만~80만원가량은 쓰는 듯하다. 그나마 접대문화가 꽤 바뀌어 줄어들었다.
매일매일 고객을 만나고 고개를 숙인 채 하루에 10장 안팎의 명함을 돌린다. 당연히 고객들과 차(茶) 한 잔은 마신다. 하루 평균 많게는 15잔, 적게는 5잔을 들이켠다. 커피를 하도 많이 마셔 밤이면 잠이 안 오는 때도 있다.
영업을 잘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저희랑 같이 일해보시지 않겠어요?” 스카우트 제의다. 평균 5~6번 이상은 받은 듯하다. 거절하기 바쁘다. 회사를 옮기면 나를 믿고 차를 구입해준 고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옮기지 못했다. 하루 한 갑 정도 피우던 담배는 가까스로 끊었다. 나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한다. 남들은 주5일제라고 해 토요일, 일요일 가족들과 나들이를 떠나는데 나는 사무실로 나와 고객 관리를 한다. 거의 주말마다 일에 빠져 있다.
그래서 1주일에 꼭 1~2회는 아들, 딸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식사라도 하려고 한다. 집 근처 해장국이라도 꼭 같이 하려고 한다. 나는 외롭고 고달픈 영업맨이다.
=‘영업맨’씨의 하루 어떻게 조사했나
헤럴드경제는 국내 완성차 5사에서 일하는 영업맨 1, 2, 3등과 개별적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하루를 조사했다. 월 휴대폰 사용료는 물론 차량유지비, 월 접대비, 양복 및 구두 보유 수, 음주 횟수를 물어봤다. 하루에 몇 잔의 차(茶)를 마시는지, 월 평균 고객 대상 우편물은 몇 통이나 발송하는지, 가족들과 식사는 몇 번이나 하는지, 담배는 몇 갑이나 피우는지도 질문했다. 영업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직업병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모두 20개의 질문에 대한 응답의 평균을 뽑아 ‘영업맨’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했다. 5개사에 각 3명씩 모두 15명의 1, 2, 3등 영업맨들 중 모두 11명에게 답이 왔고, GM대우차 2명, 쌍용차 2명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 그들의 DNA에는 열정이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에서 영업 1, 2, 3등을 했던 영업맨들은 ‘열정(passion)’이 자신들을 현재 위치로 끌어온 원동력이라고 했다. 형님같이, 동생같이, 친구같이 고객을 ‘편하게 대하는 것’도 한몫했다. 헤럴드경제는 국내 1만8000여명의 자동차 영업사원 가운데 현대차, 기아차, GM대우차,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영업고수 ‘15명’에게 “당신이 영업을 잘할 수 있는 DNA 코드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물음에 대한 답은 마치 사전에 모의라도 한 듯 ‘열정’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1200대1의 경쟁률(단순계산 시)을 뚫고 영업 1, 2, 3등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열심히 해야 한다. 항상 도전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이종인 현대차 1등 영업맨),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정송주 기아차 1등 영업맨), “차량 판매가 아닌 차량 관리를 해준다”(권영안 대우자판 1등 영업맨), “사람을 많이 남기는 영업을 했다. 조금씩 마음을 열어야 한다.”(김중곤 르노삼성차 1등 영업맨),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쌓아온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이종은 쌍용차 1등 영업맨) 등의 답이 돌아왔다.
2, 3등 영업맨들도 비슷한 답을 했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꼭 지켜라.”(김칠석 현대차 2등 영업맨), “판매에 대한 욕심을 가져라.”(권영일 기아차 3등 영업맨), “인간과의 유대관계가 가장 중요하다.”(홍지용 대우자판 3등 영업맨),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라.”(원도희 르노삼성차 2등 영업맨), “고객의 눈높이에 무조건 맞춰라.”(최태상 쌍용차 3등 영업맨) 등이었다.
영업의 비결을 말하면서 영업맨들은 항상 ‘교과서적이지만…’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교과서적인 것을 지키기 참 어렵다고 했다.
평균 100여대 이상의 차량을 팔아, 연봉 1억원이 훌쩍 넘는 이들은 연봉의 20~30%가량을 영업비용으로 지출한다고 했다. 많이 벌어도 고객을 위해 많이 쓰고 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영업사원이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각자의 가치관을 말했다. “자신감”(이종인 현대차 1등 영업맨), “책임의식”(정송주 기아차 1등 영업맨), “열정”(권영안 대우자판 1등 영업맨), “거짓말하지 말기”(김중곤 르노삼성차 1등 영업맨), “실천”(이종은 쌍용차 1등 영업맨), “현장 중시”(김칠석 현대차 2등 영업맨), “신뢰”(정성만 기아차 2등 영업맨), “펀 영업”(원도희 르노삼성차 2등 영업맨), “성실성”(한동인 쌍용차 2등 영업맨), “인내와 성실성”(김주선 현대차 3등 영업맨), “양심”(권영일 기아차 3등 영업맨), “인연 중시”(홍지용 대우자판 3등 영업맨), “제품에 대한 자부심”(김명수 르노삼성차 3등 영업맨), “고객을 향한 낮춤”(최태상 쌍용차 3등 영업맨) 등이었다.
이렇게 영업이라는 일에 빠져 있다 보면 아내에게, 아들에게, 딸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영업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 가장 미안하던가요?”라고 질문을 했더니 3명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이 모두 고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김중곤 르노삼성차 1등 영업맨은 5년 전 영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납기를 지키지 못한 고객을 떠올리며 10여분간 전화통을 놓지 못했다. 김 팀장은 “처음 입사해 6개월 동안 차 한 대도 팔지 못했는데… 약속도 지키지 못했는데 그분이 팔아주셨지요. 지금 그분 회사가 부도가 나 연락은 되지 않지만…”이라며 아쉬워했다.
열정을 갖고, 열심히 빌딩을 타며(영업맨들은 빌딩에 올라가 전단지 등을 돌리는 것을 ‘빌딩을 탄다’라고 표현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영업 고수들의 인맥 관리법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데 답이 이상했다. 15명 중 10명은 “특별한 게 없다”였다. 다만 “5~10년 갈 수 있는 인상을 만들어라.”(정송주 기아차 1등 영업맨), “나를 한번 만난 사람이 절대 잊지 않게 하라.”(홍지용 대우자판 3등 영업맨), “고객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김중곤 르노삼성차 1등 영업맨), “가족처럼 대한다.”(최태상 쌍용차 3등 영업맨) 등이 인맥 관리방식이라면 방식이었다.
매일매일 쫓기는 영업실적 때문인지 이들 영업 1, 2, 3등 고수들은 힘들어했다.
원도희 르노삼성차 2등 영업맨은 “영업은 슬픈 직업이다. 영업은 시작도 끝도 혼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 이것이 이렇게나 나를 옥죄어 올지는 몰랐다”고 한 영업맨도 있었고, “얼마 전 수입차 업체에서 오라고(스카우트) 했을 때 갔어야 했지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업사원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숫자가 다르다. 일이 힘들다 보니 하루에도 몇 명씩 떠난다. 그리고 쉽게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에 몇 명씩 신입사원들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약’ 몇 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발표한다.
2007년 9월 현재 현대차에는 6380여명, 기아차에는 3218여명, GM대우차를 판매하는 대우자동차판매에는 3500여명, 르노삼성차에는 2500여명, 쌍용차에는 24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허연회 기자(okidoki@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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