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이라고 자신했다. 종주국이라고 자부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 허물어지고 있다.대표적인 콘텐츠 산업의 하나인 한국 온라인 게임 이야기다. 밥상에 매번 김치가 오르는 듯, 안봐도 알 정도로 식상하다 해서 ‘김치게임’이라고 비아냥 거린다. 중국산 온라인 게임의 대역습이 본격화하고 있다. 더 이상 싸구려가 아니다. 국내 게임 업체들이 현실에 안주하는 사이, 그들은 당당히 명품 게임을 들고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1000년의 꿈을 담은 중국의 달 탐사 위성 창어. 그 발사 장면을 경외감속에 바라봤듯, 온라인 게임에서도 ‘공중증’(恐中症)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한 중국게임개발사가 만든 댄스게임 ‘파이브스트리츠(5Streets)’.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에서 대박을 터뜨린 한국게임 ‘오디션’을 베껴 만든 게임이다. 그러나 모방에만 그치지 않았다. 원작을 뛰어넘는 게임성과 재미를 담아내 재창조한 것. 게임 판권을 따기 위해 네오위즈, KTH, CJ인터넷, 위메이드 등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곧 한국게이머들에게 선보이게 될 이 게임은 확 달라진 중국 온라인 게임의 위상을 보여준다. ‘온라인게임의 종주국’ 한국의 ‘하수’로 천대받던 중국 온라인 게임은 더 이상 없다.
▶‘싸구려’에서 ‘명품’으로?= 최근 국내 대형 게임업체들 사이에서 중국게임 수입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는 중국게임은 서너개. 이중 거인소프트의 다중역할수행게임(MMORPG) ‘거인’, 완미시공의 ‘주선’ 등은 국내 대형업체들이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게임의 ‘한국진출사’는 초라했다. 지난 2005년 한국에 처음 진출한 중국게임 ‘항해세기’는 눈높은 한국 게이머들에게 외면받았다. ‘와신상담’은 길지 않았다. 2년 만에 진출한 완미시공의 MMORPG ‘완미세계’는 기염을 토했다. 평균동시접속자(이하 동접) 3만명을 기록하며 단숨에 인기게임순위 10위권내로 진입한 것. 이는 최근 국내 신작게임들이 동접 1만명 문턱에도 못 가보고 좌절하는 것과 대비됐다.
‘싸구려’로 취급받던 중국게임은 이제 온라인게임 종주국에 역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중국산 온라인게임이 처음 개발된 것은 2004년. 현재 중국 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자국산 게임은 40여종. 중국 시장 점유율은 60%가 넘는다. 한때 시장 점유율 80%로 중국을 호령하던 한국 게임의 입지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불과 3년이 채 안돼 한국 게임은 중국에 맹추격당하고 있는 것.
중국 게임의 성장 비결은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놀라울정도로 좋아진 기술력.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는 인건비가 싼 개발인력이 많고 업체들의 학습속도 역시 빠르다”며 “중국이 정책적으로 게임산업에 투자하고 자국업체 보호정책을 펴는 시점에서 이들의 해외 진출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또 “국내에서 모든 중국게임이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력을 앞세우고 무시할 수 없는 상대로 자란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올 상반기 중국온라인게임 시장규모는 48.5억 위안(한화 약 6000억원). 지난 동기대비 52.6% 성장한 수치다. 2008년에는 1조원, 2010년 3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한국의 게임은 ‘김치게임’= ‘샌드위치코리아’는 이제 종주국으로 불리던 게임산업에까지 어두운 구름을 드리고 있다. 현재 한국 온라임게임의 시장지위는 ‘A급’ 미국ㆍ일본산과 ‘B급’ 중국산 틈새에 끼여있다. 더군다나 한국의 주무대였던 동남아에서도 중국게임은 무섭게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한빛소프트의 송양기 해외영업부장은 “중국게임은 중화권에 친숙한 콘텐츠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약진 중”이라며 “고가정책을 펴는 한국게임과 달리 동남아업체들의 입맛대로 가격과 서비스를 맞춰주는 등 시장대응능력도 유연하다”고 말했다.
중국 내 한국게임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 ‘게임한류’는 이젠 옛말. 중국 게이머들 사이에 한국게임은 ‘김치게임’으로 불린다. 한국 음식에 항상 김치가 나오는 것처럼 한국게임도 안 해봐도 알 정도로 식상하다는 뜻. 단순히 한국게임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보기에는 뼈아픈 말이다.
한국 게임은 시장을 열고 주도해왔지만 최근 몇년새 인기 장르마다 비슷한 게임만을 쏟아내는데 그치고 있는 실정. 기술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기획력 부재는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준높은 기획력을 가진 블리자드 등 미국업체와 급성장하는 중국게임 사이에서 뻔한 ‘미투게임’으로는 승산이 없다”며 “3년 정도만 정체가 계속되면 학습력이 뛰어난 중국게임에 따라잡힐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홍 서강대 게임교육원 교수는 “게임사들이 아이템을 팔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파괴력있는 콘텐츠를 만들수 있는 장인정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의 조직적인 지원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권선영 기자(kong@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