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2# 경기도 과천시에 거주하는 황 모(여)씨는 발달지연 자녀를 위해 미술치료와 음악치료 등을 진행했다. B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려 했으나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치료사로부터 받은 치료는 보험금 지급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됐다. 설상가상으로 증빙자료에 치료사 자격증 번호를 기재해야 하고 의료자문까지 받아야만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도록 까다로워졌다고. 황 씨는 보험사 제안에 따라 의료자문을 진행했지만 F코드를 받았다. 아이와 대면도 하지 않은 의료자문은 부당한 게 아니냐 항의했으나 보험사의 자문이력이 있는 곳에서만 동시감정이 가능하다는 안내뿐이었다.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민간자격증 치료사의 치료 행위와 관련된 실손보험금 지급을 놓고 보험사가 병원을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이 최근 기각되면서 보험사와 소비자·의료계 간 갈등이 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쟁점은 민간자격증 소유자의 치료 행위를 의료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소비자와 의료계는 소아과 의사가 언어 및 신경발달을 위한 치료를 분석해 계획하고 이에 따른 실행을 놀이치료사, 미술심리치료사 등이 하기 때문에 의료행위가 맞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치료사의 치료 행위는 실손보험금 청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일부 기관에서는 치료받지 않아도 될 아이들까지 과잉진료로 발달지연 코드를 부여하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25일 소비자고발센터에는(goso.co.kr)에도 자녀가 발달지연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주로 ▶의료자문을 통해 발달지연이 아닌 발달장애로 진단하고 ▶민간치료사에 대한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치료사의 이름, 자격증번호 등 개인정보도 제출해야한다는 민원이다. 메리츠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모든 손해보험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겪으면서 아동들의 언어 발달 등이 지연되는 게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고 관련해 치료 관련 실손보험금 청구도 급증하며 갈등이 격화됐다.
지난해만 해도 삼성화재,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이 지급한 발달지연 실손보험금은 1619억 원으로 전년 대비 28.8%(362억 원) 증가했다. 매년 증가 추세로 지난 2018년(200억 원)과 비교하면 규모가 8배나 확대됐다.

보험사는 일부 기관에서 치료받지 않아도 될 아이들이 과잉진료로 발달지연 코드를 부여받아 보험금을 편취한다고 지적한다. 민간자격증 소유자의 치료 행위는 의료 행위로 볼 수 없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라 인정되는 비급여 대상 진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현대해상은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미술·음악·놀이 치료사 등 치료 행위가 실손보험금 청구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달지연 아동 치료기관들에 발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소아과 등 의사가 언어발달과 신경발달을 위한 치료를 분석해 계획하고 이에 따른 실행을 놀이치료사, 미술심리치료사 등이 하고 있기에 의료행위가 맞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갈등은 소송으로 번졌다.
지난 2022년 현대해상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A씨가 병원 부설 치료센터를 설립하고 고용한 민간자격증 취득 치료사에게 아동들의 놀이 치료를 맡겼으며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언어치료 진단을 발급했다는 게 문제가 됐다. 하지만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는 기각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는 발달지연 아동들을 직접 진찰한 뒤 클리닉에서 프로그램 치료를 받도록 했고 진단의 배경 및 결과와 장단기 목표 등이 기재된 계획서를 작성하기도 했다"며 "프로그램 진행 도중에서 지속적으로 아동들을 진찰 및 검사해 의사의 지시 감독하에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2022년 9월에 제기한 소송으로 그동안 제반사항 변경도 있어 소송 자료들을 보완해 항소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발달지연 보험금 지급 문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어서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김헌수 순천향대 교수는 “발달장애 역시 신체적결함과 같이 중대한 질환으로 꼽히는 상황에서 보험사가 일반 병원에 고용된 언어발달치료사에게 치료받는 등 민간치료자체에 보험금 지급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며 "일부 도덕적해이가 있다면 약관을 명확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서 소비자 피해를 줄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당 판결의 경우 패소가 아닌 손해배상 관련 소송기각으로 곧바로 보험금 지급 기준 여부에 대해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발달지연 보험금 청구는 코로나 이후 확산된 것인데 치료영역이냐 아니냐가 경우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진단을 받고 음악치료나 미술치료센터 등 비의료기관이 치료를 행한 후 보험금을 청구할 경우 비치료 영역은 걸라내야 하는 것이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심사 의무다"라며 "정신과치료를 비급여에서 보장하지 않듯이 보장하지 않는 영역은 분명히 있지만 병원에 속해있는 센터에서 의료인이 치료했다고 하는 등 상황이 매우 달라 여전히 고심해봐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