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과 존 펠란 해군성 장관 등 미국 행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현장에는 무역협상 지원을 위해 재계에서 가장 먼저 워싱턴으로 날아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있었다.
김 부회장은 한국 정부가 협상의 마지막 승부수로 던진 ‘마스가’ 프로젝트 신뢰성을 검증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령을 받은 이들을 이끌고 오후 내내 48만㎡에 달하는 조선소 주요 생산 현장을 안내했다.
김 부회장은 구체적인 데이터와 비전을 바탕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펼쳤고 미국 측의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게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여겨 볼 점은 사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화그룹은 조선업과 제대로 인연을 맺지 못했고 김동관 부회장도 별다른 경력을 쌓은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지난 2022년 8월 부회장 자리에 올라 그룹 경영을 진두 지휘하기 시작했고, 산업은행이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하고 나선 것 때는 그해 9월이었다.
김동관 부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조선과 방산, 우주항공 분야에서 빠른 성장을 이뤄내며 한화그룹의 체질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미무역협정에서 보여준 김 부회장의 활약은 그가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어떤 성과를 이뤄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하다.
◆결단력·추진력 빛난 김 부회장 체제서 조선·방산 매출 3.2배, 영업이익 5.1배 늘어
김동관 부회장은 이달 말로 부회장 승진 3년을 맞는다. 김 부회장은 2022년 8월 29일 한화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현재 조선, 방산, 우주, 태양광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한화그룹에서 조선은 볼모지였으나 김 부회장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이끌며 그룹 캐시카우로 자리잡는데 역할을 했다.
방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대표 손재일)로 단일화 시키며 그룹 제조부문 매출에서 조선·방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19%에서 39%로 대폭 끌어올렸다.
김 부회장 승진 전인 2021년 한화그룹 조선·방산 계열사 매출은 6조7602억 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의 19%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매출이 21조4934억 원으로 3.2배 늘었다.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9%로 확대됐다.
영업이익도 2021년 3788억 원에서 2023년 8800억 원, 지난해 1조9355억 원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김 부회장 승진 후 5.1배 늘었다.

우선 한화그룹에겐 불모지나 다름 없던 조선업을 주력 사업으로 키우는데 김 부회장이 큰 역할을 했다. 김 부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진두지휘했고 2023년 5월 인수 절차를 마무리한 뒤 사명을 ‘한화오션’으로 변경하면서 등기임원인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으며 책임경영의 의지를 보였다.
만년 적자 기업으로 불리던 한화오션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TOP(Total Operational Performance) 추진 TF’를 신설하고, 선별 수주 중심의 전략을 정착시킨 것도 김 부회장이다.
한화오션은 2023년 11월 친환경 기술이 탑재된 9만3000㎥급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을 첫 수주했고, 이후 두 달 만에 총 7척의 VLAC을 추가 수주하며 수익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국내 조선사 최초로 미국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했고, 현재까지 총 3척의 정비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추가로 4척 이상이 수주 후보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2022년 1조6344억 원 적자를 냈던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편입 후 연간 2000억 원 이상의 흑자를 내는 효자기업이 됐다. 올해도 상반기 기준 4조4803억 원 규모의 수주를 기록했다.
방산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2021년만 해도 매출이 1조 원가량이었지만, 지난해 7조9351억 원으로 8배 가까이 늘었다. 영업이익도 매년 2배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올해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상반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매출은 11조7577억 원으로 210%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조4252억 원으로 301% 늘었다.
방산 부문 성장은 김 부회장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뒷받침된 결과로 풀이된다. 김 부회장은 2021년 3월 ‘스페이스허브’ 팀장으로 발탁돼 우주산업을 포함한 방산 전략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해 유럽 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김 부회장은 곧바로 유럽 시장조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핀란드,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주요국에 인력을 대거 파견했다.
당시 유럽은 한화의 방산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김 부회장이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세일즈 전략을 펼쳤고 폴란드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2022년 7월, 폴란드는 K9 672문과 천무 288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김 부회장은 부회장으로 승진 후 그룹 내 흩어져 있던 방산 계열사 통합 작업을 진두지휘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8월 한화정밀기계 방산부문, 2022년 11월 한화디펜스, 2023년 4월 ㈜한화의 방산 부문을 잇달아 흡수합병했다.
항공엔진 제조에 특화됐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자주포, 장갑차, 탄약, 에너지 시스템, MRO, 항공·우주 체계까지 포괄하는 종합 방산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해외를 누비며 세일즈 활동도 적극 펼쳤다.
김 부회장은 2023년 7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폴란드 국빈 순방에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동행하며 방산 외교에 나섰다. 그는 한화그룹을 대표해 현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수출 협상을 주도하면서, 폴란드를 전략적 파트너로 집중 공략했다.
그해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약 3조4474억 원 규모의 K9 자주포 152문 추가 수출을 위한 2차 실행 계약을 체결했다.
2025년 1월에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고, 2월에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IDEX 2025’ 방산 전시회에 참여해 현지 국영 방산기업 EDGE Group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중동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2023년과 2024년에는 다보스포럼(WEF)에 참석해 한화의 친환경 에너지 및 조선 전략을 세계 무대에 소개했다.
◆글로벌 방산 '톱10' 꿈꾸는 김동관 부회장

그룹에 조선·방산 사업 기틀을 잡고 성과를 낸 김동관 부회장은 글로벌 방산 '톱10'을 꿈꾸고 있다.
김 부회장은 지난 5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2025 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글로벌 방산기업 톱10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세계 방산기업 순위는 19위다.
또 2035년까지 매출 7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 달성이라는 중장기 비전도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수주잔고는 31조7000억 원이다.
김 부회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2028년까지 총 11조 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폴란드 등 동유럽 생산거점 확보 및 사우디 합작공장 설립에 6조2700억 원 △신규 시장 진출을 위한 R&D에 1조5600억 원 △지상 방산 인프라 구축에 2조9000억 원 △항공 방산 인프라에 9500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실제 한화는 폴란드 현지에 미사일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호마르-K용 CGR-080 미사일 생산을 시작으로 장거리 미사일 공동 개발까지 염두하고 있다.
K9PL 자주포의 현지 생산도 논의되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 측이 계약 조건으로 현지 생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분야에선 한화오션이 KSS-III 배치2 잠수함 3척을 신속 공급하고, 1척을 임차해 훈련에 투입하며, 1억 달러 규모의 정비센터를 폴란드에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군사적 위험이 낮은 폴란드 서부 또는 남서부 지역이 신공장 후보지로 거론된다.
한화 방산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크다. 지난 3월 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했을 당시 투자자와의 사전 소통이 부족했고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이었다는 비판의 중심에 섰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있던 이재명 대통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거론하며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 원으로 줄였다가 주가 상승에 힘입어 인해 2조9000억 원 규모로 다시 늘렸다.
대부분 기업들은 유상증자 후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을 겪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잠시 주춤 했지만 곧 그래프 기울기를 회복했다. 현재는 유상증자 발표 시점보다도 주가가 30% 올라있다.
유상증자 발표 후 김 부회장은 앞장서 자기회사 주식 매입에 나서는 리더십을 보였다. 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식 4650주(약 30억 원)를 매입했다. 임원들도 김 부회장을 따라 60억 원 규모의 자기회사 주식을 매입하며 책임경영 의지를 보였다.

김 부회장은 지난 3년간 그룹 내 입지가 확대되며 후계 구도를 확정 지었다.
김 부회장은 승진 전 (주)한화 지분 4.91%를 보유했다. 하지만 지난 4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으로부터 지분 4.86%를 증여받으면서 지분율이 9.77%로 높아졌다.
당시 김 회장은 보유 지분 22.65%의 절반인 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했다. 김 부회장 동생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각각 3.23%씩을 받았다.
김 부회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비상장사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주)한화 지분 22.16%를 더하면 사실상 김 부회장이 한화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다.
김승연 회장 일가 중 보유 주식가치는 김 부회장이 약 1조4600억 원으로 가장 많다. 자녀 세대 승계율이 78.5%에 이르는데 김 부회장이 38.4%로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한화솔루션 실적 부진은 김 부회장 입장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영업손실 3000억 원을 기록했는데 석유화학 수요 침체 장기화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나마 올해는 25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