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하기 
기획 & 캠페인
기적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상태바
기적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6.24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기적’이라는 단어가 제법 잘 어울린다.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 중 최초로 전용극장을 만들었고, 100석 남짓의 소극장에서 장기 공연하여 17만 관객을 동원하였다. 입 소문을 거치고 거쳐 관객들이 ‘무슨 작품인지는 몰라도, 제목은 들어봤다’는 이 작품은, 2010학년도부터는 교과서에 수록되기로 결정되어 더욱 기적 행진에 박차를 가할 것 같다. 이 연극은 정말 작은 소극장에서 오밀조밀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대형 작품의 불꽃놀이가 아니고 구수한 뻥튀기 차의 소리. 그러나 분명 이 작품, ‘빵!’ 터지는 소리가 난다.

소시민들로 이루어진 훌륭한 캐릭터 구성
강태국씨 부부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30년째 운영하고 있는 세탁소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 드나든다. 무대 의상을 빌리러 오는 배우 지망생, 남의 집에서 할머니 수발을 하는 아줌마, 명품을 두른 아가씨, 등장만 해도 시끌시끌한 세탁 배달부까지 말이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숨 쉬는 모습은 왠지 흥미를 끌기 마련. 강태국의 어눌한 말투 하나하나에 웃음을 터뜨리다 보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웃음 코드를 깨닫게 된다. 탄탄한 캐릭터 구현이 있다면, 과장되지 않은 작은 소재만으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캐릭터가 비록 이름도 잘 생각 안 나는 소시민이라도 말이다. 사실 연극의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이런 잡다한 이야기들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웃음들을 거쳐 이미 내 이웃이 되어 버린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건에는, 객석도 호흡을 멈춘다. 어머니가 맡긴 빨래에 유산이 있다고 주장하는 남매의 등장. 과연 이 엄청난 재산의 행방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잘 세탁되어 나온 착한 마무리
어두운 밤의 속삭임, 속고 속이기, 집단 패싸움, 이전투구泥田鬪狗……. 온갖 진흙탕을 지난 뒤, 연극의 마지막은 어이없으리만큼 착하다. 흙이 잔뜩 묻어 가망 없으리만큼 더러웠던 옷이 깨끗하게 빨아져 나온 것처럼, 대책 없던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비누 향 같은 웃음을 풍기고 있다. 연극의 인트로 부분에서 잔뜩 얻어맞아 시위하는 사람들을 기억한다던가, 뭔가 치밀하고 꽉 짜인 반전을 기대했다면 비눗방울이 터질 때 같은 허전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귀여운 꼬마가 나와서 퐁퐁 비눗방울을 뿜어대는데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다. 다들 크게 웃어버리는 것을 보면 우린 이런 따뜻함을 보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돌아가신 아버지께 하소연하는 강태국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수더분함도, 이런 착한 결말도 현실엔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오아시스 극장이기에 가능한 착한 결말은 지극히 연극적이어서, 무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기쁨을 갖게 한다.

더 시원한 오아시스를 맛볼 수 있도록 목마름을 주시게.
포근한 공연이라 공연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긴장감의 부재이다. 극 초반에 나온 비렁뱅이 차림의 사내에게 후반부를 미리 읽어버렸다면 빠른 눈치를 탓해야 하는 걸까? 순서와 시간을 이용한 반전을 집어넣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동네 사람들과 대화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 정도만 해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극이 진행 되면서 캐릭터의 특징을 파악해 나가는 방식은 굉장히 매끄럽지만, 역시 어두운 불빛 속에 누구의 눈이 유산을 향해 반짝거릴지 짐작해버렸다는 사실은 아쉽다. 뭔가 강렬한 펀치 한방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오아시스 세탁소에 와서 시원한 웃음 한 사발 잘 마시고 간다마는, 좀 더 입을 타게 하는 긴장감이 필요하다.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우리나라 소극장 연극 중에서 드물게 롱런 하는 작품이다. 이 세탁소를 돌리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한 빨랫물에 적셔, 박박 비누칠을 해서 하얗게 때를 빼고, 퐁퐁 솟아오르는 비눗방울을 바라보는 웃음 한줄기까지. 그런 우리 일상 속에 담겨있는 인간미. 이것이 오아시스 세탁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뉴스테이지=백수향 기자]

주요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