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 식품에서 이물질이 검출돼 신고를 하더라도 사후처리가 너무 더디게 이뤄져 소비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식품분야 주무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청도 포상금까지 걸면서 식품 이물검출 신고를 권장하고 있지만, 정작 지자체를 오르내리는 행정절차가 복잡해 신고자를 지치게 만들고 있다.
신고가 관할 지자체에 접수된 뒤 거주지 및 유통경로 조사를 거쳐 제조업체 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이 복잡해 조사결과가 나오는 데 보통 3주 이상, 길게는 2달까지 소요되는 실정이다.
식품업체들도 식품 이물 클레임에 팔짱을 끼고 있다. 소비자가 제조업체에 신고한 경우, 회사측이 이물질을 인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이물질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식약청 등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니 무조건 참고 기다리라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기 일쑤다.
◆ 신고한지 두 달되도록 '깜깜 무소식'
경상북도 춘양면의 류승하(남.46세)씨는 두 달 가까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조사결과를 기다린 끝에 성남시청으로부터 달랑 2장의 공문을 받고 허탈해 했다.
류 씨는 지난 2월5일 잡채를 만들려고 A식품업체의 맛살을 손질하다가 검은 이물질을 발견하고, 다음날 회사측에 신고했다.
류 씨가 이틀 뒤 봉화군청에 이물질이 검출된 식품을 보낸 다음 해당 제조업체가 있는 성남시청으로 조사가 넘어갔지만 한 달이 지날 때까지 조사결과를 통보받지 못했다.
성남시청은 이물질의 성분조사를 의뢰하는 한편, 맛살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혼입됐을 가능성을 놓고 현장조사를 벌였지만 두 달이 다 되도록 조사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답답한 나머지 류 씨가 처음 이물질을 보냈던 봉화군청에도 연락했지만 ‘성남시청에서 두 곳에 분석을 의뢰하는 바람에 회신이 늦어졌다. 다음주면 연락이 갈 것’이라는 똑같은 안내만 반복됐다. 류 씨는 “매번 다음주라고 하는데 소비자가 보채니까 이제야 서두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대기업 제품이라서 더 늦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류 씨는 3월 말에야 조사결과를 통보받았다. 그러나 발견된 이물이 콩기름으로 밝혀졌고 인체에 위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류 씨는 "조사결과를 읽어보면 마치 A사가 소비자를 타이르는 듯한 시각을 보여준다. 음식쓰레기를 분석해도 분명 같은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명징한 사실에 대해서 모호하게 표현한 부분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A사 측은 류 씨가 신고한 이물은 맛살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된 콩기름(대두유)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답변했다.
◆ “아기가 아파요” 조사결과는 언제쯤?
울산광역시 달동의 김현정(여.31세)씨는 지난 3월16일 생후 8개월째인 아기에게 주려고 구입한 B사의 분유에서 검은색 이물질을 발견했다. 김 씨는 얼마 전부터 아기가 자꾸 토하고 경기를 일으키고 있어 이물질이 발견된 분유 때문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김 씨는 다음날 회사측에 이물이 검출된 분유를 보내며 성분 분석을 요청했다.
김 씨는 “이전에도 거뭇거뭇한 이물질이 나왔지만 성분상 그런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해서 묵인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이물질은 새까맣고 크기도 7mm나 되는데다 금속성분인지 딱딱했다. 아기가 며칠 전부터 이상증세를 보여 하루빨리 어떤 성분인지 알고 싶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는 일반 유통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믿지 못해 그동안 비싸더라도 I사의 카페에서 제품을 직접 구입해 왔다. 김 씨는 해당 분유를 먹이고 있는 다른 엄마들도 사실을 알아야 될 것 같아 카페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회사 측의 반응은 김 씨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글이 삭제되고 ‘글쓰기’ 기능마저 제한된 것.
김 씨는 “B사 제품을 사용하는 엄마들끼리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사실을 공유해도 되는 것 아니냐”면서 “일방적으로 소비자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이나 이물질이 나와도 행정처분만 받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화가 난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B사 관계자는 “분유에서 발견되는 이물질은 초분인 경우가 많은데 사실 초분은 이물질로 분류되지 않는다”며 “김 씨가 제보한 제품은 현재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 ‘아니나 다를까’ 조사결과 받아보니..
부산광역시 당리동의 장현숙(여.36세)씨도 지난 3일 C사 분유에서 금속성 이물질이 나와 경악했다. 생후 15개월짜리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려고 통을 살피다가 스테이플러(호치키스) 칩을 발견한 것.
장 씨는 "같은 개월 수의 아이보다 몸체가 작고 아플 때가 많아 특별히 성장발달에 좋다는 제품을 믿었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물질이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큰애도 같은 제품을 먹여 키웠기 때문에 믿었는데 이물질을 보고 나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며 “아이가 돌이 지나서 분유병을 떼고 컵에 먹는데 하마터면 스테이플러를 삼킬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고 말했다.
신고를 받은 C사는 지난 24일 장 씨에게 제조과정상 혼입될 수 없는 이물질이라고 조사결과를 전했다.
장 씨는 “아니나 다를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서를 받아 허무하다.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 스테이플러를 사용하지도 않는데 이물질이 어디에서 들어갔다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 속 터지는 '식품 이물조사'..왜?
앞서 소개된 사례와 같이 식품에서 검출된 이물질은 길게는 2달 가까이 기다려야 조사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 당초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품안전소비자신고센터를 만들면서 지자체가 15일 안에 소비자에게 조사결과를 회신하도록 권장한 것과 현실은 크게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이물에 대한 조사결과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성남시청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단순 이물질의 경우 대부분 식약청이 아닌 지자체에서 조사한다. 문제는 실제로 검사여건이 되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 할 수 없이 민간연구소에 의뢰하는 경우 조사결과를 통보받는데 시일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식품업체가 소비자를 핑계로 지자체 및 정부기관에 이물조사를 떠넘기는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식품업체 I사의 관계자는 “자사 연구소에서 이물을 조사할 경우 신속하게 조사결과를 통보하지만 이를 믿지 않는 소비자도 있어 검역원 등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이유를 댔다.
결국 기업측 조사는 믿을 수가 없고, 공공기관은 인력 부족으로 늘어나는 클레임 건수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식약청에 신고해도 조사결과를 통보받는데 너무 오래 걸려 언론 등에 제보하는게 더 빠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은 "'신고했으니 우리는 모른다' '조사결과 문제가 있으면 행정처분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식품업체 태도에 더 실망했다"거나 "이렇게까지 이물 조사를 요청했음에도 인체에 무해하니 괜찮다니..이보다 더 심한 이물이 나왔어도 방치됐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