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신차 발표와 관련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계열사끼리 밀어주고 당겨주기 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경영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다.
평소 정몽구 회장은 입버릇처럼 "무한 경쟁의 시장에서 살아남는 단 하나의 방법은 최고 품질의 차를 생산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 무한경쟁의 시발점이 그룹 내부에서, 최고의 차를 내놓기 위한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최근 부쩍 경쟁력이 높아진 '아우' 기아차의 저돌적인 공세에 '형님' 현대차가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양사의 경쟁은 최근 신차 발표를 계기로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기아자동차는 스포티지R의 출시행사를 경쟁차종인 현대차 투싼ix에 비해 무척이나 크고 화려하게 진행했다. 행사만 화려한 게 아니라, 차량도 투산ix를 위협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스포티지R은 차체자세제어장치(VDC)와 운전석 동승석 에어백 등을 기본 장착해 투싼ix의 사양을 앞섰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 및 기자단들은 "스포티지R이 투싼ix를 조만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여가 지난 4월1일 현대차는 즉시 VDC를 기본 장착한 투싼ix 업그레이드 모델을 출시했다. 스포티지R에 대한 일종의 견제인 셈이었다.
두 회사의 신경전은 이 뿐이 아니다.
현대차는 국산 중형차 최초로 YF쏘나타 전 모델에 사이드&커튼 에어백을 장착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사이드&커튼 에어백은 측면 사고가 났을 경우 운전자와 동승자를 보호할 수 있는 에어백으로 그간 YF쏘나타 중에서도 최고급 모델에만 한정 적용돼 왔다.
흥미로운 점은 사이드&커튼 에어백을 최초로 장착해 차별화 마케팅을 벌이려고 했던 곳이 사실은 기아차였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의 전언에 의하면 기아차가 5월 출시 예정인 'K5'에 사이드&커튼 에어백과 VDC 기본 장착을 계획했었다고한다. 현대차의 발빠른 대응으로 '최초'라는 수식어는 고스란히 YF쏘나타에 돌아간 것이다.
물밑 경쟁 속내는? '견제 혹은 시너지'
이쯤되면 현대차의 의중이 궁금해진다. 한 식구끼리 견제하는 모습이 썩 좋게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가 기아차의 상승세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똘똘한 아우가 든든한 형님 자리를 넘보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풀이다.
실제로 4일 현대·기아차가 발표한 1분기 판매 실적을 보면 현대차가 기아차의 약진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1분기 국내시장에서 기아차의 K7과 쏘렌토R은 각각 1만3천409대와 1만1천419대가 팔렸다. 경쟁차종인 현대차의 그랜저와 싼타페보다 800대 가량씩 많이 팔린 수치다. 그랜저는 1만2천654대, 싼타페는 1만627대가 팔렸다.
그간 국내 준대형 세단의 대명사로 불리며 주름잡아 오던 '그랜저'의 자존심이 기아차에 의해 뭉개진 형국이다.
현대차가 투싼ix 업그레이드 모델로 최근 출시된 스포티지R을 즉각 견제하고 나선 게 당연한 수순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판매 경쟁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치열하다.
특히 미국시장에서 기아차는 쏘렌토R과 쏘울을 내세워 쏘나타를 앞세운 현대차와 외형상 호각세를 이루고 있다.
3월 쏘렌토R이 9천156대, 쏘울이 5천106대 등 총 1만4천262대가 판매됐다. 현대차의 판매량을 대부분 차지한 쏘나타는 1만8천935대가 팔렸다. 아직까지는 기아차가 조금 부족하지만 올 하반기 K5와 K7이 출시 예정에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수출량 성장세에서도 전년대비 현대차는 37.8% 성장했지만, 기아차는 두 배 가까운 68.7%의 성장세를 보이며 맹추격하고 있다. 물론 전체 수출량은 현대가 단연 우위다. 1분기 현대차는 67만대, 기아차는 37만대 판매했다.
실적 위기감에 따른 현대차의 견제라면, 형 동생 중 누구든 잘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법도 하다. 때문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 '시너지를 노린 치밀한 전략' 등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내부 견제가 선의의 경쟁이 돼 현대·기아차가 지난해 글로벌 5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