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요즘 본부장과 지점장들을 만나면 CEO의 마인드로 일해 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다. 국책은행에서 기업투자은행(CIB)으로 전환을 꾀하기 위해서는 산업은행이 해묵은 관행에서 벗어나 탈태환골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실제로 민 행장은 산업은행 11개 본부의 본부장과 국내 44내 점포의 점포장들에게 CEO라는 이름을 달아줬다.
지난해 도입한 '본부장·지점장 최고경영자(CEO)제도'를 통해서다. 본부장과 지점장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CEO가 되어 책임경영을 실시하는 게 이 제도의 주요 내용이다.
사실 지난해 실시된 제도는 반쪽짜리였다. 위에서 내려준 경영목표를 달성할 책임만 주어졌을 뿐, 그 이상의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경영목표를 부분별 CEO가 직접 설정하는 것을 비롯해 CEO에 맞먹는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본부장과 지점장에게 재량권을 확대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CEO'라는 명칭을 붙인 것은 산업은행이 유일하다. 책임경영에 대한 민 행장의 의지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뜻이다.
민 행장은 지난 2월 열린 상반기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모든 본부장과 점포장들은 관할 본부 및 점포의 CEO"라며 "본부장 및 점포장에게 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하되 연말에는 철저하게 평가하겠다"며 책임경영의 중요성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지난 9일 민 행장은 11개 본부의 본부장과 CEO제도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본부장이 책임지고 본부를 경영하고, 그 결과를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본부장은 이달 중순까지 다시 국내외 점포장들과 MOU체결을 완료할 계획이다. 지점장 또한 자기 지점에 대해서는 CEO급의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된다. 이에 앞서 산업은행 국내점포 44개는 성장기업금융본부장과 '2010년도 영업점 경영성과협약'을 체결하고 올해 경영목표를 확정한 상태다.
본부장과 지점장들은 이처럼 매년 협약을 맺고 재량권과 자유권을 부여받는 대신 연말에는 목표달성 여부를 평가받는다. 철저한 영업실적 위주로 평가결과는 인사고과(고과월급, 성과급 등)에 반영한다. 이번 협약서에는 영업점의 경상이익, 대출평잔, 예수금평잔 등의 이익목표와 마케팅계획, 영업기반 확대계획 등의 전략추진과제가 포함돼 있다.
산업은행 성장기업지원실 박범석 팀장은 "지난해부터 본부장과 지점장 CEO제도를 실시했는데 이제까지 그룹 내에서 목표달성액을 정해줬다면 금년부터는 지점장들이 참여해 목표액을 제시하고 이를 그룹과 본부에서 협의해 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룹과 본부장, 지점장들이 경영이익을 도모하고 영업실적을 높이는데 공동의식을 갖게 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민영화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과거에는 공급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질적성장을 통해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하겠다는 뜻이다. 말그대로 아래로부터의 체질개선이다.
지점장들은 재량권이 확대되고 적극적인 영업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반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영업실적에 대한 부담과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영업으로 부실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팀장은 "지점장들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액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본부와 협의를 통해 결정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반 수신은행이 수신유치 경쟁을 벌인다면 산업은행은 기업여신이 많은데 자칫 과당경쟁으로 대손충당금 증가할 경우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본부나 지점에서도 이를 감안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영업의 경우 지점들이 본부와 협의를 통해 하기 때문에 과당경쟁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일축했다.
민 행장은 기업투자은행으로의 변신을 통해 산업은행을 2020년 세계 20위권의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시킨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본부장 CEO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 포석인 셈이다.
'관료적인 은행', '경쟁을 모르는 은행'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산업은행이 체질개선에 성공해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