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들이나 타는 차?"
25년 역사의 그랜저는 참으로 굴곡 많은 역사를 지녔다.
국민차 쏘나타를 넘어선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조폭들이나 타는 깍두기 차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에쿠스 체어맨 등 상위 급 차량의 잇딴 등장으로 대형차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그랜저는 대형차 최초로 월 판매량 1만대 돌파기록을 갖고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전체 판매량 2~4위에 달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1986년 첫 출시 이후 내수 98만여대, 수출 27만여대 등 총 125만여대가 판매된 대한민국 대표 세단이다.
그런 그랜저가 5세대를 맞이하게 됐다.
◆럭셔리 대형차 바로미터 '각 그랜저'
첫 번째 그랜저는 1986년 국내 최초의 대형승용차로 탄생했다. 일명 '각(角) 그랜저'로 불리며 부자들의 차라는 이미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랜저가 지나가면 누구나 만사 젖혀 놓고 시선을 차에 고정시키기 일쑤였다.
국내 대형승용차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며 6년간 총 9만2517대를 팔아치웠다.
부(富)의 상징이 된 그랜저는 승용차의 크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배기량이나 차체가 그랜저와 같거나 크면 대형차로, 작으면 중형차로 분류된 것.
'각 그랜저'의 최소 배기량은 2000cc였다. 이 기준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상 대형승용차와 중형차를 구분하는 기준은 배기량 2000cc다.
하지만 그랜저가 일본 미쓰비시의 '데보네어'를 그대로 카피해 들여온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대형승용차 아이콘으로서 이미지가 실추되기도 했다.
데보네어는 일본 내에서 20여년간 디자인 변동이 없어 '실러캔스(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렸다.
이후 영화에 조폭 두목이 각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장면이 자주 나오면서 조폭들이 타는 '깍두기 차'라는 비아냥거림도 듣게 됐다.
이에 현대차는 1992년 9월 '각 그랜저'의 이미지를 벗은 '뉴그랜저'를 출시했다. 중후한 멋은 그대로 유지한 채 직선을 곡선으로 바꿨다.
유럽식 세단을 추구한 뉴그랜저는 배기량을 3500cc로 늘리며 고급화를 꾀해 '조폭의 차'가 아닌 '상류층의 차'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하며 16만4205대를 판매했다.
하지만 출시 4년 만인 1996년 같은 식구인 '다이너스티'에게 대형승용차 1등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랜저, 준대형 다운그레이드?
이후 나온 모델은 '그랜저 XG'. 1998년 10월 출시돼 4세대 모델인 TG가 나오기 전까지 7년간 31만1485대가 팔렸다.
문제는 더 이상 그랜저가 대한민국을 이끄는 상류 차가 아니게 돼버린 것. 다이너스티에 이어 1999년 출시된 초대형차 '에쿠스'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크기를 자랑한 탓이다.
초기 에쿠스는 각 그랜저가 그러했든 네모반듯한 상자를 연상케 할 정도로 직선을 강조하며 권위를 뿜어냈다. 보수적 성향의 상류층을 흡수했다.
그랜저는 다이너스티에도 밀려 3등으로 전락하며 '대형'자에 '준'자를 붙이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쌍용차 체어맨과 기아차 오피러스가 나온 것도 이맘때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부유한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SM7에게 시장의 일부를 내줘야 했다.
직선도 아니고 현재의 유선형도 아닌 어정쩡했던 디자인도 문제가 됐다. 소위 '뽀대'가 느껴지지 않아 체면을 중시하는 부유층들에게 외면당한 것.
◆초심(初心) 그랜저, 성공가도 달리다
위기의식을 느낀 현대차는 XG보다 차체와 배기량을 파격적으로 키운 그랜저TG를 내놓는다. 2005년 5월의 일이다. 아울러 현대차는 19년 전의 브랜드명인 '그랜저'로 차명을 회귀했다.
회사의 모든 것을 걸고 개발했다는 3300cc 람다 V6 엔진과 2700cc 뮤 V6 엔진이 장착됐다. 2000, 2500, 3000cc이던 배기량도 2700, 3300, 3800cc로 대폭 상향 됐다.
동급 최대의 레그룸과 운전석 공간을 확보해 대형차로서의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엠블럼에서 L은 'Luxury를 Q는 'Quality'를 상징할 정도다.
그랜저TG는 데뷔무대였던 2005년 서울모터쇼에서 '베스트카'를 수상했고, 2007년 미국 '스트래티직 비전'의 종합품질지수에서 대형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현대차는 일본 도요타의 글로벌 브랜드 렉서스의 'ES350'을 '주적(主敵)'으로 설정해 비교 시승을 하는 등 자신감을 뽑냈다.
판매량 또한 40만5545대로 대단했다.
'비싼 차' 임에도 출시 3개월 만에 8304대를 판매하며 쏘나타와 포터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대형차 최초로 월 판매량 1만대 돌파 기록도 세웠다. TG는 출시됐던 그 해 12월 1만248대를 판매했다.
프리미엄 준대형 세단이면서도 중형세단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누렸던 그랜저TG는 이제 후속모델인 신형 그랜저(HG)에게 바통을 넘겼다.
◆고급스러움의 완성 신형 그랜저
5세대 신형 그랜저는 3년 6개월여의 기간 동안 4500억원을 투입해 완성됐다.
'웅장한 활공'을 의미하는 '그랜드 글라이드(Grand Glide)'를 콘셉트로 고급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전 모델에 6단 자동변속기를 기본 장착한 신형 그랜저는 최고 출력 270마력의 람다 II 3.0 GDI 엔진, 최고 출력 201마력의 세타Ⅱ 2.4 GDI 엔진도 적용해 강력한 동력 및 주행 성능을 갖췄다.
차체 자세 제어 장치(VDC), 샤시 통합 제어 시스템(VSM), 타이어 공기압 경보장치(TPMS)와, 급제동 경보 시스템(ESS), 9 에어백 시스템 등 안전 시스템이 기본 적용됐다.
또한 국내 최초로 최첨단 주행 편의 시스템인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과 전자 파킹 브레이크(EPB), 주차 조향 보조 시스템 등 첨단 편의사양을 갖췄다.
신형 그랜저가 2010년 베스트셀링카 쏘나타와 럭셔리차 에쿠스, 제네시스의 틈새에서 얼마만큼의 독창적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