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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짠돌이'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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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짠돌이'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두 얼굴
  • 심나영 기자 sny@csnews.co.kr
  • 승인 2011.01.18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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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10조원, 정규직 직원 7000여명을 이끄는 거대기업 수장이 '얼굴 없는 회장님'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패션사업을 필두로 유통, 레저 등에 걸쳐 거대그룹을 일군 이랜드그룹은 작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뒤 올초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를 각각 10조원, 1조원으로 선언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1980년 이후 창업한 기업 중, 대기업 계열이 아닌 회사로는 이랜드가 '매출 10조-영업이익 1조 클럽'에 처음으로 가입할 수 있다. 이랜드그룹은 중국시장 2조원 목표 등 급격한 사세확장에 맞춰 올해만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천500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박 회장은 작년 12월 이랜드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봉 최대 50%인상안과 은퇴기금 신설 등 '통큰 대우'를 선언했다.


언론과 인터뷰를 한 번도 한적 없는 은둔의 CEO, 야구모자에 청바지 차림, 독실한 기독교 신자, 소문난 짠돌이, 자수성가의 대명사 등 수식어가 따라붙는 박 회장은 누구일까? 또한 전에 없던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높아진다.

 

▶2평짜리 보세옷 가게에서 이랜드왕국까지

이랜드의 고향은 서울 이화여대 앞 2평짜리 옷가게다. 1980년 9월 29살 총각은 이곳에 '잉글런드 허포드샤이어점'을 열었다.


박 회장은 당시 주로 동대문 보세시장에서 옷을 떼 와 팔았다. 검정색 등 기본색상이 주류였던 당시 빨간색 같은 원색 계열의 옷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사실 이 가게를 열기까지도 박 회장에겐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을 앞둔 1975년 근육무력증에 걸렸다. 근육이 점점 약화돼 힘을 못 쓰다가 심해지면 전신마비가 되는 병이었다.


2년을 꼬박 병마와 싸우다 1978년 2월 기적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학원강사로 나섰지만 곧 접어야 했고 연령제한에 걸려 일반 회사에 입사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500만원을 투자해 낸 옷가게는 박 회장에게 기회였다. 그의 단골 고객이었던 두 사람이 분점을 내고 싶다고 했다. 1986년 지금의 이랜드로 상호를 바꿨다. 잉글런드의 첫 영어철자 E와 LAND를 조합한 이름이다.


달랑 2개에서 시작한 이랜드 프랜차이즈는 현재 연매출 10조원을 넘보는 이랜드 왕국으로 성장했다.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으로 '중국 1조원 패션시장 개척'


작년 중국시장 1조원 시대 개막은 박 회장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그는 올해 중국 매출 2조원을 돌파하겠다고 공언했다. 1993년 이랜드의 중국 진출기를 살펴보면 기회를 읽는 박 회장의 안목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박 회장은 중국 베이징대학의 초청을 받았다. 이랜드 출범 14년 만에 연매출 1조원대의 패션기업으로 키운 성공 스토리를 들려달라는 요청이었다.


강연 자리에서 박 회장의 눈에 들어온 건 베이징대 교수들의 옷차림이었다. 중국 최고의 부호이자 엘리트인 그들은 하나같이 인민복 차림이었다. 박 회장은 그때 이랜드 중국 진출을 결심했다.


이랜드는 한국에선 고만고만한 중저가 브랜드지만 중국인들은 고급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다. 이랜드는 중국에서 '옷을 사랑한다'는 의미인 '이이렌(衣戀)'으로 통용된다.


박 회장은 처음부터 고급화를 내걸고 백화점을 뚫는 전략으로 승부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미지가 굳어져 고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백화점 진입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제품은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중국 남북부로 나눠 체형, 선호색상, 성격 등을 감안해 차별화했다.


중국에 진출한 18개 브랜드 모두 프리미엄급으로 분류된다. 토종 브랜드 최초로 중국에서 1조원 매출을 올려 중국에서는 경쟁자인 제일모직, 한섬, 코오롱, LG패션 등을 저만치 따돌렸다.


박 회장은 인도 베트남 시장도 욕심내고 있다. 중국을 꼭짓점으로 인도 베트남까지 1조원대를 돌파해 의류유통 업계 강자로 떠오르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의류업계 3위 업체인 '무드라 라이프스타일(Mudra Lifestyle)'의 경영권을 확보했고, 베트남 국영섬유기업인 '탕콤'을 인수했다.


▶혀를 내두르는 철저함으로 승부


직원들 사이에서 박회장은 굉장히 꼼꼼한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세밀한 업무지적을 통해 직원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능력을 갖췄다고 정평이 나있다. 이랜드가 '패션리더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것도 박 회장의 철저함 덕분이다.


중국에 진출할 때 박 회장은 직원들에게 '아예 중국인이 돼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런 방침에 따라 중국법인에는 10년 이상 근무자가 지금도 수십 명씩이나 된다. 현장조사도 철저했다. 우리나라 '읍'에 해당하는 '전' 지역은 물론 오지까지 조사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생각에 중국 이랜드 본사의 패션연구소는 상하이 번화가에서 현지인 수백 명의 옷차림을 정밀 분석해 디자인하도록 했다. 직원들을 회사 사택 대신 현지 주택을 구입해 거주하도록 한 것에서도 박 회장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랜드 왕국의 리더는 요즘도 카니발을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다. 운전기사도 따로 없고 상무급인 비서실장이 운전기사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박 회장의 동생인 박성경 부회장도 검소함을 이어 받아 종종 그의 차를 직접 운전하고 신촌사옥에 드나드는 모습이 직원들에게 자주 목격된다.


양복 대신 야구모자에 청바지 차림으로 수행원도 없이 지금도 종종 경쟁사 매장에 들러 시장조사를 하는 박 회장의 철저함이 지금의 이랜드를 만든 셈이다.


연봉인상 은퇴기금 조성 배경은?


하지만 이랜드에도 문제는 있었다. 과중한 업무와 책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보수가 작아 이직이 잦았다. 기독교 등 독특한 기업문화도 이직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있다.


업무상 기밀유출을 막는다는 이유로 직원들은 연봉협상을 할 때 일정 기간 이직을 금지하는 '전직 금지 서약서'를 써야한다. 당연히 이직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소송 등 말썽이 빚어졌다.


결국 박 회장은 채찍 대신 당근을 들었다.  일한만큼 대우해줘 직원 만족감을 높인다는 것. '신보상정책'인 은퇴기금 조성과 파격적인 연봉 50%인상 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연봉인상은 3월부터 능력에 따라 차등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직원들의 반응이 열광적이다. 이직율도 지금보다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은퇴기금은 매년 순이익의 10%를 따로 떼내 퇴직금과 별도로 정년퇴직하는 직원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연간 순이익이 3000억원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매년 수 백 억원의 기금이 조성될 전망이다.


지주회사격인 이랜드월드 지분을 73%를 보유한 박 회장이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결국 박 회장 몫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셈이다. 이랜드의 10억 클럽 입성을 위해 베일 속 CEO는 자신의 몫부터 기꺼이 내놓았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심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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