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세계경영 첨병 역할을 했던 대우자동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GM대우는 20일 사명을 '한국지엠주식회사'로 바꾸고 새로운 브랜드 '쉐보레'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GM대우는 오는 2월에 출시할 다목적 차량(MPV) 올란도에 쉐보레 브랜드를 가장 먼저 단다.
이어 스포츠 쿠페 카마로와 소형차 젠트라 후속 아베오, 아베오 해치백, 라세티 프리미어 해치백, 윈스톰 후속인 캡티바, 스포츠카 콜벳 등 8개 차종이 속속 쉐보레 브랜드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대우차 브랜드는 연내 명맥이 끊기게 된다.1983년 대우자동차 출범 27년 만의 일이다. 2002년 GM이 대우차를 인수한지는 8년 만이다.
GM대우는 이미 수년 전부터 대우 브랜드 지우기를 계속해왔다.
작년 3월 마이크 아카몬 GM대우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쉐보레 브랜드 도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사명 변경도 검토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곧이어 대우의 마지막 자취인 대우자동차판매와도 결별을 선언했다.
더 이상 대우 브랜드가 국내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GM대우 차를 구입한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가 벌써 쉐보레 로고를 달고 다닌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GM대우는 김 전 회장의 부정적 잔재를 지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 한 것 같다"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김우중 전 회장 시절 대우차 한 고위 임원이 르망과 프린스의 후속모델 개발을 위한 수천억원의 자금을 요청하자 김 전 회장은 "왜 지금 차가 잘 팔리는데 쓸데없이 후속모델 개발하려고 돈 몇 천억원을 낭비하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
적당히 껍데기만 바꿔 끼우는 등 신차개발에 등한시 했다는 이미지가 GM대우에게 족쇄가 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GM대우에까지 이어진 대우차의 모태는 1955년 설립돼 국산 최초의 지프형차 시발택시를 제작했던 신진공업이다.
신진공업은 1965년 도요타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여 새나라자동차를 인수, 이듬해인 1966년 1500㏄ '코로나'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도요타가 철수하고 GM과의 합작을 통해 GM코리아를 설립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새한자동차 시절을 거쳐 1978년 대우그룹 품에 안기게 된다.
1983년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대우차의 대표적인 XQ엔진을 개발하고 승용차 트랜스미션 조립공장을 준공하는 등 사세를 넓혀가는 동시에 신차 '맵시나' 돌풍을 일으켰다.
대우차는 '탱크처럼 튼튼한 차'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는데 성공했다.
1986년 로얄살롱은 고급차의 대명사로 인기를 끌었다. 월드카 프로젝트로 나온 르망은 40만대 이상이 판매됐다.
1991년 출시된 티코는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 경차시대를 열었다. 티코는 2001년까지 10년여 동안 63만대가 팔려나갔다. 경차의 맥은 2005년 마티즈가 잇게 된다.
마티즈는 현재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로 GM대우 베스트 셀링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90년 생산된 대우차의 첫 고유모델 에스페로는 전투기를 닮은 혁신적 디자인이란 평가를 듣기도 했다.
경영 호조로 대우차는 1992년 GM과의 합작을 청산했다. 이듬해엔 대우자동차판매를 설립해 생산과 판매를 분리하는 등 체계적인 자동차 기업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여세를 몰아 김 전 회장은 1997년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등 독자모델 3개를 동시 출시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신차 3총사는 10% 이던 대우차의 시장점유율을 단숨에 25%까지 끌어 올리며 현대차, 기아산업과 3파전을 이뤘다.
특히 누비라는 김 전 회장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전 세계를 누비는 우리의 차'라는 뜻을 지닌 '누비라'의 이름도 김 전 회장이 직접 지었다.
자동차를 첨병으로 동유럽과 베트남 등지에서 세계 경영을 펼친 것도 이시기다.
그러나 대우차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경영난에 빠지며 과거 합작 관계였던 GM에 14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헐값에 매각된다. 회사명도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로 바뀌게 된다. 한일월드컵으로 전 국민이 떠들썩했던 2002년의 일이다.
2009년 모기업 GM의 파산으로 GM대우는 우량 자산만을 모아 새롭게 출범한 뉴 GM에 편입, 마이크 아마콘 체제로 재편된다.
GM대우는 작년 3월 출범 8년 만에 1천만대 생산을 돌파하고 두 자릿수 내수 점유율에 육박하면서 과거 영광의 재연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GM대우에게 대우는 낡고 실패한 브랜드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GM그룹과 GM대우는 '대우'라는 글자를 지우고 지난해 글로벌 판매 425만대를 돌파하며 7.4초에 한 대씩 판매된 글로벌 브랜드 '시보레'를 끼워 넣는 극약처방을 하기에 이르렀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