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보린 주세요. 뉴스에서 뭐라고 해도 난 안 믿는 당께~ 평생 이 약 먹고도 아무 탈 없었구먼”
며칠 전 몸살약을 사기 위해 약국에 갔다가 들은 얘기다. 당황한 약사가 “그렇죠, 할머니. 많이 드시지만 마세요”라고 당부하며 대화는 끝났다.
안전성 문제가 입증되지 않은 제품을 버젓이 판매하고, 안전성 논란을 인지하고 있는 소비자가 거리낌 없이 문제의 제품을 구입하는 이 희한한 광경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난 달 식약청은 이소프로필 안티피린(IPA)성분 해열진통제에 대해 1년간의 연구기간 동안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후속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지난 2008년부터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데 대한 식약청의 결단이었다.
이 진통제는 골수억제작용에 의한 과립구감소증과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혈액질환과 의식 장애, 혼수, 경련 등의 부작용을 의심받고 있다.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이미 판매되고 있지 않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종근당, 동아제약 등은 곧바로 IPA 대신 에텐자미드 성분이 들어간 제품으로 리뉴얼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유독 삼진제약은 안전성에 문제될 만한 국내 부작용 사례가 없고 모든 선진국에서 판매되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라며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삼진제약이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통제 시장에서 매출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던 게보린은 안전성 논란 후에도 매출액 변화가 크지 않았다. 반사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했던 종근당 펜잘도 유의미한 매출 증가는 없었다.
다시 말해 삼진제약은 앞으로 주어진 1년 동안 제품을 열심히 팔아치우고, 그 후 연구결과에 따르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안전성이야 어찌되든 소비자들에대한 믿음만큼은 진정 ‘한국인의 두통약, 게보린’답다.
그러나 삼진제약이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기업정신으로 한다' 사시를 생각한다면 두 가지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게보린 판매를 중지하고 안전성 입증 연구에 착수하거나, 전량 리콜조치 하고 문제 성분을 빼낸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삼진제약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안전성 입증조차 안 된 제품을 여전히 판매 중인 삼진제약이 과연 또 다시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소비자들의 변함없는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김솔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