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을 둘러싼 정부와 정유사의 대립이 정부의 한판승으로 마무리되어 가는 양상이다.
SK에너지가 17일을 기점으로 난방유(등유) 판매가격을 4월말까지 리터당 50원 인하하여 공급하기로 결정하고, 현대오일뱅크도 같은 날 난방유 가격을 10원 내린다고 발표했다. 이어 추가인하에 대해서도 검토해 나간다는 입장을 전했다.
GS칼텍스도 부랴부랴 50원 인하를 통보했다. S-OIL측도 "아직까지 정해진 (인하)계획은 없다"면서도 "시장가격이라는게 있기 때문에 다른 정유사가 가격을 인하하면 비슷한 대응을 하지 않겠나”라며 여운을 남겼다.
비록 소폭이지만 기름값 인상의 책임이 없다며 완강하게 버티던 정유사들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SK에너지는 이번 등유가격 인하와 관련 "추운 겨울 나기에 고생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분담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조여오는 정부의 압박에 결국 항복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 유가 인하 위한 정부의 필살 정책 2개월
나날이 치솟는 기름값을 두고 정부와 정유사가 서로 책임을 떠민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물가인상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정부가 정유업계와 통신 등을 정면겨냥하면서 정유사들은 사면초가에 놓였다.
“한국에선 정유사업 못 한다”고 한탄이 흘러 나왔다. 정부의 공세 수위가 여느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기름값이 적정한 수준인지 검토하라”며 직접 나섰고, 바로 이날 오후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6개 정유회사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은 1일 신년방송좌담회에서도 “(기름값은) 역시 대기업들이 협조를 해야 한다”고 포문을 다시 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름 가격 결정의 투명성을 지적했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가격의 구성요인을 뜯어 보자고 엄포를 놓았다.
◆ 정유업계 有口無言
서슬퍼런 정부의 압박에 정유업계는 몸을 낮췄다.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면서 누구나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세금이 기름값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유사 마진은 리터당 100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거 내린다고 경제에 직접적인 파급효과를 낼 수 있겠나?”라며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실제로 지난 9일 소비자시민모임이 분석한 2011년 1월 휘발유값 구성비는 세금 51.9%, 국제휘발유가격 40.3%, 정유사 유통비용 3.2%,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 4.6%였다.
즉 기름값이 리터당 2천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정유사 유통비용은 64원에 불과하다.
정유사들이 "내수로 돈 버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세금을 한푼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사기업들의 희생만 강요하는건 관치 행정의 전형”이라고 볼멘 소리를 터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