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사진>이 섬유유연제 시장 진출 32년만에 '지존'인 피죤을 꺽어 생활용품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피죤은 국내에 처음 섬유유연제를 알린 원조업체. 1978년 첫 제품을 선보이고 당시 소비자들에게 생소했던 '섬유유연제'의 인지도를 높인 끝에 30여년간 부동의 1위를 차지해왔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아예 피죤이란 회사명이 섬유유연제란 일반명사처럼 쓰일 정도.
그러나 올 1~2월 섬유유연제 시장에서 차석용 사장이 '사고'를 쳤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만년 2위를 달리던 LG생활건강의 '샤프란'은 이 기간 동안 시장점유률 43%를 기록, 피죤(36%)을 꺽고 1위를 차지했다. 피죤은 지난 2007년 점유율이 48%로 정점을 찍었지만 올해 36%까지 내려앉았다. 국내 섬유유연제 시장은 연간 2300억원 규모로 피죤과 함께 LG생활건강(샤프란), 옥시(쉐리) 등이 경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피죤이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 기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영업 전략을 고수하는 바람에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분석했다.
피죤은 올해 초 섬유유연제의 공급가격을 10%가량 인상했다. 섬유유연제의 주요 원료인 팜유의 국제시세가 지난해 이맘때보다 36% 정도 올라 더 이상 가격인상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경쟁사들은 가격인상을 유보하는 바람에 소비자들로부터 '피죤이 갑자기 비싸졌다'는 눈총을 받았다.
피죤이 뒤늦게 덤증정(1+1) 행사를 진행했지만 때는 늦었다. 게다가 한국소비자원이 지난달 생필품 80개의 시판가격을 조사한 결과 가장 비싸진 상품에 ‘피죤 용기 엘로미모사'가 포함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차가워졌다는 후문이다. 회사 측은 가격이 전월 대비 30.6% 상승한 이유에 대해 기존에 실시하던 1+1 행사가 종료되면서 단위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죤과 LG생활건강의 희비는 시장점유율에 따른 실적으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LG생활건강은 올 1분기 매출 8296억원, 영업이익 1105억원, 순이익 782억을 기록해 전년동기 대비 각각 23.6%, 18.8%, 22.2%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처음 영업익 1천억원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의 분기실적을 기록했다.
연간 실적도 호조를 보였다. LG생활건강은 매출이 2009년 2조2천165억원에서 지난해 2조8천265억원으로 늘어나 3조 클럽 가입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영업이익도 2281억원에서 3468억원, 순이익은 1580억원에서 237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올 1분기 영업익이 1천억원을 돌파한 것을 감안할 때 올해는 4천억원 가까이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쉐리'를 팔고 있는 옥시 레킷벤키저도 꾸준히 실적을 개선하고 있다.
옥시는 2009년 2천402억원이던 매출액을 지난해 2천438억원으로 소폭 늘렸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30억원, 271억원으로 전년(209억원, 176억원)보다 100억원 이상 증가했다.
반면 피죤은 지난해 참담할 정도의 실적으로 주주들에게 배당금조차 지급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피죤은 지난 1993년 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불과 7년만에 200% 성장했다. 2005년에는 17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12년만에 3배 이상 몸집을 불렸다. 그러나 2009년 매출은 오히려 1655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엔 1437억원으로 뒷걸음질 쳤고, 영업익과 순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반토막(119억원→58억원), 4분의 1토막(62억원→15억원) 났다.
단기차입금도 2009년 177억원에서 지난해 284억원으로 증가했다. 자산총액이 1천015억원에서 1천120억원으로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부채총액은 467억원에서 579억원으로 불어났다.
업계에서는 "샤프란이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워 인지도를 높이고, 저렴하면서도 피부가 민감한 소비자들을 위한 신제품을 내놓은 반면 피죤의 마케팅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치명타를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