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일 할 때인 30대 초반의 남성이 지난 1년여간 ‘블랙컨슈머’를 직업으로 삼은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식품에 고의적으로 이물질을 넣고, 이름을 바꿔가며 휴대폰 6대로 업체를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
경찰에 따르면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려 매달 100만원씩 월급처럼 돈을 구했다.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확인된 금액만 총 1천600만원. 계좌를 추척해 드러난 식품업체는 전국 108개사로 유명 제과.제빵회사도 포함됐다고 한다.
블랙컨슈머는 몇 푼 안 되는 식품을 먹고 치료비나 정신적 피해보상을 무리하게 요구하면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한다.
실제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구지역의 한 소비자가 제기한 클레임 때문에 살이 쭉쭉 빠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식품을 먹다가 손톱 조각이 발견됐다며, 약 5천만원 상당의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한 다는 것. 그동안 비교적 체계적으로 소비자대응을 해왔지만 이번 보상액에 대해서는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차일피일 시간이 흐르자 현재 보험사에 떠넘긴 상태.
또 다른 중견기업도 “몇 번 현장에 나갔던 사람들은 이물질 클레임이 조작된 것인지 딱 보면 감이 온다. 그렇지만 DNA조사로 시시비비를 가린다며 일을 크게 키우기보다 원만히 해결하려다 보니 현금이 오고가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식품업체들이 블랙컨슈머에 시달리는 일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식품의 경우 업체들이 우선 대외적으로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데다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기 쉽다는 점에서 블랙컨슈머의 가장 만만한 '먹이감'이 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남성의 수법을 보면 블랙컨슈머로서 '프로'의 면면을 보였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금액을 얘기하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리며 업체들이 먼저 보상액을 제안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할 경우 업체들이 녹음했다가 역소고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사용할 경우 업체들의 블랙리스트 공유를 통해 쉽게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 대포폰과 대포통장으로 무장하는 용의주도함도 보였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 남성에게 돈을 준 식품업체는 모두 108개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남성을 고발한 1개 식품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돈을 보내지 않았다)관련되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돈을 뜯긴 피해자이면서도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 망신인 것은 물론 이같은 범죄의 표적으로 꼽힐 수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식품업체들이 이처럼 입막음에 급급할 경우 모방범죄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스스로를 '호구'로 만드는 셈이다. 이 남성처럼 '직업'으로서 블랙컨슈머가 유망하게 보일 우려도 있다.
식품업체들은 이같은 경우에 대비해 대부분 대응 매뉴얼을 갖고 있다. 그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서 발생한 사태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원칙적인 대응, 그것만이 식품업계가 블랙컨슈머의 검은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