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사들이 '계열사간 업무 시너지'를 이유로 앞 다퉈 매트릭스 체제 도입에 나서고 있지만 본래 목적보다는 회장의 권한 강화에만 치중돼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황제경영'이란 눈총을 받고 있는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매트릭스 도입을 명목으로 자회사 경영에까지 입김을 강화할 경우 자회사의 독립성 약화와 지배구조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때문에 자회사의 독립경영 보장과 금융지주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지주사 회장들, 매트릭스로 '황제경영' 본격화?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회장 김승유)가 지난 2008년 매트릭스 체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데 이어 최근에는 신한금융지주(회장 한동우)가 WB(자산관리)와 CIB(기업투자금융) 사업부문에 대한 매트릭스 도입을 마쳤다.
우리금융지주(회장 이팔성)도 매트릭스 도입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KB금융지주(회장 어윤대)는 매트릭스를 도입하지 않는 대신 필요에 따라 은행과 증권사가 시너지를 위해 협조토록 했다.
이미 매트릭스 체제를 구축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인 금융지주사들은 이를 통해 계열사간 시너지 연계와 고객에 대한 전문적인 자산관리가 가능해 질 수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도입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많다.
사실 매트릭스 조직은 계열사별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은행·증권 등 자회사들의 유사업무를 사업부문(BU)으로 묶어 각 부문장이 이를 총괄토록 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각 부문장과 법인장(계열사 대표)간의 권한과 책임이 불일치 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각 부문장이 사업을 운영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되는 금융사고 등의 책임은 법인장이 지게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금융지주사 임원이 사업부문장을 맡게 될 경우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 남용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현재 신한금융의 경우 CIB 부문장은 신한은행 오세일 부행장이, WM 부문장은 위성호 부행장이 맡았다.
오세일 부행장은 신한금융 부사장과 신한금융투자 비상임이사을 겸직하고 있다. 위성호 부행장의 경우 신한금융 부사장을 맡다 지난해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 모두 신한은행 소속이면서 신한금융지주 임원을 지냈거나 현재까지도 발을 담고 있다.
실제로 매트릭스 체제의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08년 개인금융, 기업금융, 자산관리 부문의 매트릭스 도입에 이어 지난해에는 글로벌 부문까지 신설한 하나금융의 경우 내부 통제 제도의 허점이 발생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하나은행 자체감사에서 드러난 국민관광상품권 횡령 등의 금융사고가 매트릭스 체제의 허점 때문이라고 판단, 하나금융에 제도적 보완을 지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 "지주사 책임 명시 등 법개선 시급해"
매트릭스 도입을 둘러싸고 지주사와 은행간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우리금융은 당초 지난해 매트릭스를 도입하려 했으나 우리은행과 노조 등의 반발로 이를 잠정 유보한 상태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현재 매트릭스 도입과 관련해 각 계열사별, 부서별 책임자들이 주축이 된 TF팀을 구성해 사업부서장의 권한 문제 등을 세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매트릭스 도입을 아직 공식화한 게 아니어서 내부 반발 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우리은행 노조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노동조합은 법적으로 보장된 카운터 파트너가 아니기 때문에 회장이 임명한 사업부문장에 대해 노조에서 견제하거나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지주의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관련법률안이 통과된 이후에 매트릭스 논의를 진행하는 게 맞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조 관계자는 "최근 우리금융지주에서 우리은행과 우리투자증권 등에 TF 참여요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은행에서는 공식적으로 TF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며 "우리은행도 노조와 이유는 다르지만 매트릭스가 도입되면 은행장의 권한은 축소되는 반면 책임은 모두 지게 돼 불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상당수 금융전문가들은 금융지주사의 매트릭스 도입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매트릭스 도입이 경영 효율성과 생산성 시너지에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검증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권한만 있고 법적 책임은 없는 국내 지주회사의 기형적 지배구조를 더욱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4년 전 매트릭스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하나금융지주가 금융당국으로부터 보완 지적을 받았던 것처럼 아직까진 효과가 극히 미미하고 실험적인 단계"라며 "국내의 모든 금융관련 법제는 업권 분리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는데 매트릭스는 '시너지'라는 명목으로 업권간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어 인사권 충돌 등의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지주회장이 자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데 회장이 모든 자회사의 경영과 조직개편 등을 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매트릭스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황제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매트릭스 도입시 우려되는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를 소유하고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상법상 실체가 없어 지주사와 자회사가 각각 독립된 개별회사로 간주되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금융위원회에서 금융회사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는데 지주회사와 자회사간의 권한 및 책임을 어떻게 분명히 나눌 것인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현행 지주회사법 자체의 법적인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