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에서 마련한 대형버스에 몸을 실고 10여분을 달리다보니 보기 좋게 줄이 세워진 차밭이 나타났다. 시즈오카는 일본지역 내에서도 품질 좋은 차를 재배하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
그래서인지 시즈오카 공항을 출발해 30여분을 달리는 동안 시선이 닿는 곳마다 미니 풍차들이 곳곳에 서 있는 차밭을 볼 수 있었다. 미니 풍차들은 차 재배에 치명적인 습기와 온도를 조절해 주는 것은 물론 전기를 만드는 기능까지... 꽤나 쓸모를 갖췄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오차노사토. 일본전통차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아담한 정원을 둘러보다보니 은은한 차 생각이 절로 났다. 시음차로 목을 축이고 서둘러 향한 곳은 후지가와 휴게소 전망대. 후지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이동 중 가이드는 “시즈오카 여행 중 후지산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란 무척 힘들다. 오늘 볼 수 있다면 전생에 많은 덕을 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을 담기에 가장 좋다는 포인터에 서자 후지산이 선명하게 몸체를 드러냈다. 중턱부터 정상까지 흰 눈이 쌓인 후지산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해 ‘전생’까지 운운한 가이드의 안내가 의아해질 정도. 그러나 실제로 1년 중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20%를 채 넘지 않는다고 하니 마치 응모권에 당첨된 듯 들뜬 기분으로 바뀐다.
서서히 어둠이 찾아올 무렵 도착한 곳은 요코하마의 야마시타 공원과 차이나타운 주카가이. 바다를 메워 만든 공원인 야마시타 공원은 강아지와 산책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어서인지 관광지라기 보다는 그들의 일상에 슬~쩍 발을 담그는 느낌이랄까?
순간,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 반려견에 대한 그리움이 엄습했지만 시원스레 뻗은 공원과 호화 유람선인 히카와마루의 묘한 조화를 즐기는 것으로 훌훌 털어버렸다.
다양한 도요타 자동차를 직접 시승해 볼 수 있는(물론 주행은 불가~!!) 메가웹에서 연거푸 셀카를 찍고 17~8세기 유럽 분위기를 담아낸 대형쇼핑몰 비너스포트에 들러 일본스러운 소품들을 실컷 눈요기 후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비에 젖은 도쿄를 탐닉하다
3박 4일의 일정 중 유일하게 자유시간이 주어진 2일째. 도쿄는 두 번째 방문인만큼 오늘의 컨셉은 ‘마음 닿는 대로 걷기’.
일정의 시작은 도심 전철을 타고 아사쿠사를 찾아가는 것. 도착한 아사쿠사 전철역 앞에는 인력거 여러대가 눈에 띈다. 길게 늘어선 기념품과 먹거리 등을 파는 상점을 따라 300m가량을 쭉 걷다보면 센소지라는 거대한 절이 모습을 드러낸다. 방문객들이 경쟁하듯 향을 피워대는 바람에 넓은 야외임에도 머릿속이 아득해질 지경. 가족의 건강을 기원한 후 서둘러 긴자로 고고~.
와코백화점이 있는 주오도리와 럭셔리 명품 매장이 즐비한 나미키도리를 후다닥 둘러본 후 출출한 배를 규동 한 그릇으로 채우고 롯본기힐스로 발길을 옮겼다.
롯본기역 출구를 나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망 (거미를 브론즈로 형상화 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과 54층의 초고층 빌딩 모리 타워. 여성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수많은 명품샵들이 엄청난 규모로 늘어서 있다. 일반 백화점이나 면세점의 규모에 익숙해선지 매장으로 선뜩 들어서기조차 쉽지 않은 위용이다.
각종 명품들의 유혹을 이겨내고 향한 곳은 롯폰기 힐스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국립신미술관. 전면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설계된 박물관은 어떤 멋진 카페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만큼 멋스럽다. 그래서인지 유독 혼자서 차와 독서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많다. 별도의 요금 없이 여유와 운치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주택가 아자부주반을 향하는 길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각국의 영사관과 외교관들의 사택이 모여 있는 아자부주반은 도쿄내 부촌으로 손꼽히는 곳.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예쁜 집들이 들어 선 고전적인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빗속을 헤맨 끝에 동물적인 감각으로 발견한 것은 유명한 붕어빵 가게. 통통한 팥의 달콤함에 비해 빵의 질감은 다소 질기지만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점에 만족~!!
도보여행의 마무리는 니시아자부에 위치한 곤파치. 니시아자부에 위치한 곤파치는 영화 킬빌의 결투 장면에 모티브가 된 곳이며 부시대통령 방문 시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방문한 곳으로 유명세를 탄 곳. 퇴근시간이 임박하면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여행자들은 서둘러야겠다.
하루 종일 도쿄의 곳곳을 누비느라 녹초가 된 몸에 나마비루(생맥주)와 맛깔스런 음식들을 채워넣다보니 어느새 슬그머니 행복해진다.
설원 속, 새로운 하코네를 발견하다
마지막 일정은 화산과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 갑작스레 쏟아지는 눈으로 인해 아시노코를 향하는 길의 운치가 예사롭지 않다.
아시노코는 두 번의 화산 폭발로 가미야마 신산의 한쪽 면이 붕괴되어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 하코네 외륜산과 후지산의 멋진 절경이 어우러진 절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모토하코네 방면으로 이동하기 위해 하코네해적선을 이용하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 될 듯.
모토하코네의 중요 명소 중 한 곳은 바로 하코네신사. 신사를 오르는 길에 늘어선 거대한 삼나무들의 행렬은 헉~소리가 나올 만큼의 절경. 그 중 신사 내에 있는 수령 1천년이 넘는 삼나무, 안잔스기는 가나가와현의 천연기념물이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아시노코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향한 곳은 오와쿠다니. 곳곳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진한 유황가스가 가득한 오와쿠다니는 3천여년 전에 이미 두차례에 걸쳐 화산이 분화한 곳. 670m가량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나쁘거나 가스 분출이 심한 날은 출입이 금지되기도 한다고.
뭐니뭐니해도 오와쿠다니의 명물은 구로타마고(검은 달걀). 온천물에서 익혀서 겉이 검게 변한 달걀은 담백한 맛도 좋지만 하나를 먹을 때마다 7년씩 수명이 길어진다는 속설이 있으니 믿거나말거나 하나쯤은 맛보는 센~스.
휴식과 동요가 공존하는 여행
이번 여행은 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햇살, 비, 눈이 교차하며 마치 계절을 뛰어넘는 듯한 변화를 경험해서인지 더욱 독특한 경험으로 남았다.
겨울이라는 날씨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화창함 속에 즐긴 시즈오카의 차밭과 요코하마에서의 하루, 촉촉이 젖어든 도쿄 도심의 곳곳을 전철과 도보로 누빈 둘째 날, 온통 흰 눈이 덮인 호수와 산 속 온천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었던 하코네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산 중턱에서 쌓인 눈 때문에 차가 멈춰서는 아찔한 경험까지 보태진, 이런저런 변수 속의 이번 여행은 어느 때보다 다이나믹하고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시즈오카-도쿄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고즈넉한 시골의 모습과 화려한 도심의 모습을 절묘하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고층 빌딩들과 화려한 샾들이 가득한 도쿄의 중심부를 거닐며 묘한 긴장감과 마음 속 동요를 즐기는 시간은 언제나 부족할틈 없을만큼 매력적이다. 반면 몇 분이고 지속되는 초록빛 차밭의 행렬과 한국의 시골과는 또다른 정갈함과 멋을 보여주는 일본의 시외 풍경에서 느껴지는 여유 또한 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임은 분명하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휘달리는 여행이 아닌, 간간히 휴식이라는 쉼표가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복잡한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주저 없이 짐을 꾸려 떠나도 좋을 듯싶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백진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