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수리차 방문해 고객 집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낸 정수기 설치기사가 이른 새벽 무단침입을 시도하다 발각된 무서운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기막힌 사고를 접수받은 업체 측의 나몰라라 식의 대응에 소비자는 수개월간 불안에 떨며 살아야했다.
28일 수원시 이 모(여.31세)씨는 지난해 5월 경 유명 정수기업체에서 구입한 정수기를 AS받는 과정에서 무서운 경험을 했다.
기기를 설치한 몇시간 뒤 물이 새는 현상이 발생해 AS를 요청했다. 당시 기사 방문 시간에 하필 집에 아무도 없었던 터라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 씨에 따르면 번호를 알려주기를 망설이는 자신에게 설치기사는 "수리가 5분이면 끝날텐데 오늘 못하면 다시 방문 일정을 잡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담당자의 명함도 받은 상태였고, 믿을 수 있는 대기업이라 기사의 편의를 봐줬다.
사건은 약 2주 후 발생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난 이 씨가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던 중 놀랍게도 지난번 집을 방문했던 정수기 기사가 현관 비밀번호 네자리를 입력한 뒤 태연히 문을 열고 들어온 것. 기겁한 이 씨가 소리를 지르자 놀라서 달아났다고.
다행히 도주하는 기사의 차량 번호로 경찰에 신고해 벌금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자신의 얼굴과 사는 곳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 근무중인 업체의 정수기를 더 이상 이용할 수가 없어 환불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고객센터 상담원은 설치 대리점과 논의하라며 책임을 미뤘고 설치 대리점은 불가하다고만 대응했다.
이 씨는 "누군가가 얼굴을 가리고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며 "만약 깊이 잠들어 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모른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고객의 집에 무단침입하는 직원이 버젓이 일하는 업체에다 어떻게 매달 필터 교체 등을 서비스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사건 이후에도 그 설치기사가 집 앞에 찾아오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해 업체 측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과하려고 찾아갔겠지', '그럴 사람이 아니다'며 무책임한 답변 뿐"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사용이간이 5개월밖에 되지 않아 환불 규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된 것 같다"며 "늦었지만 최대한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조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