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순천시에 사는 박 모(여)씨는 결혼을 앞두고 여드름치료 연고를 발랐다가 낭패를 봤다. 좀 더 깨끗한 피부를 갖기 위해 발랐던 연고 때문에 화학적 화상을 입어 얼굴이 온통 붉은색 도가니가 돼 버린 것.. 이 때문에 웨딩 사진 촬영 일정 취소로 위약금이 발생했고 결혼식만 겨우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제약회사에 항의해도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며 제품 환불이 최선이라는 반응이었다. 피부가 망가지고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도 망쳤는데도 보상받을 길은 없었다. 박 씨는 “결혼식에 온 사람들이 얼굴이 왜 그렇게 됐냐고 물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며 “연고값 몇 천 원을 환불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사는 조 모(여.39세)씨 역시 지난 10월 10일 잇몸 염증으로 치과 치료 후 처방받은 진통제와 소염제을 먹고 부작용으로 생고생을 해야 했다. 약을 먹고 30분이 지나자 가려움증과 함께 온 몸이 붓는 증세로 4~5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약을 조제한 병원과 약국에 문의한 결과 나프록산나트륨 성분의 부작용이라는 걸 알게 된 조 씨. 40년 동안 특정 음식이나 약에 알러지 반응을 겪어본 적 없었던 터라 제약회사에 항의했지만 업체 측은 약 포장지에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명확히 약이 원인인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조 씨는 “약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소비자는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는데 제약회사가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피해 구제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관련 당사자인 제약사, 의사, 약사가 모두 뒤얽혀 책임 주체자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된 의약품 부작용 발생 건수는 올해 상반기까지 8만5천529건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만3천28건)에 비해 98.8% 증가한 수치로 1년으로 계산하면 17만1천58건에 이른다.
또한 2008년 1만2천796건, 2009년 2만7천10건, 2010년 6만4천143건, 2011년 7만4천657건, 2012년 9만2천615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 의약품 부작용 보상 책임은 어디에?...피해구제제도 마련 시급
그렇다면 부작용에 대한 책임과 보상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약사법 제86조1항에 따르면 “의약품의 제조업자·품목허가를 받은 자 또는 수입자로 조직된 단체는 의약품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제약회사에서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른 음식물이나 약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해당 제약사에서 제조한 약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명서에 부작용 등 주의사항을 명기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A제약사에서 내놓은 감기약을 먹고 실명에 이른 김 모(여.37)씨가 제약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는 제약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김 씨가 실명한 원인이 해당 약품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설명서에 ‘고열이나 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복용을 중단하고 의사와 상의하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에 제약사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일반적으로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지만 치료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소비자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명시했다면 제약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의약품 부작용 피해 구제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어 제약사의 도의적인 책임을 운운하며 제품 환불 및 최소 치료비만 보상한다 하더라도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를 신설하고 보상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80년부터 제약회사가 절반을 부담하고 정부가 나머지를 보조하는 형식으로 피해구제제도가 이뤄지고 있다. 부작용으로 인한 질병, 장애, 사망에 대한 의료비, 의료수당, 장애연금, 유족연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대만은 2001년 전담기관을 설립해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일시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와 북유럽의 경우 발생원인을 차후에 생각하고 국가에서 일단 보상을 해주는 무과실보상방식을 채택해 넓은 범위의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각 제약회사로부터 전년도 생산, 수입액의 최대 0.1%를 거둬들어 의약품 부작용 피해자들의 진료비, 장애일시보상금, 장례비 등을 위한 보상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고 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편 식약처는 내년부터 제약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점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지난 7월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과 민주당 최동익 의원이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사업에 대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약사법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문지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