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강화유리 냉장고'가 약한 충격에도 유리가 쉽게 파손돼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파손시 수리비가 평균 수십만원 청구돼 경제적 피해까지 심각한 상황.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도 올들어 30여 건의 냉장고 강화유리 파손 관련 제보가 이어졌다. 강화유리가 냉장고에 사용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작년까지는 거의 없던 제보 내용이다.
강화유리 냉장고는 외관이 고급스럽고 일정 충격에 강해 지난 2~3년부터 값비싼 모델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충격 강도, 구입 후 사용기간, 가격 등 여러 조건과 상관 없이 파손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기존 플라스틱 냉장고보다 가장 중요한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최근 신형 제품에 강화유리 대신 메탈 소재의 스테인리스 냉장고를 선보이고는 있지만 800리터 이상 제품 상당수는 이미 강화유리 소재로 출고돼서 피해는 앞으로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사례1. '절대 깨지지 않는다'더니 반찬통에 부딪혀 산산조각
지난해 4월 혼수로 300만원짜리 LG전자 디오스 양문형냉장고를 구입한 박 모(여)씨. 외관이 유리라서 걱정됐지만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판매사원의 설명을 믿고 구입했다고.
하지만 지난 달 30일 반찬통을 넣다가 강화유리 문짝과 살짝 부딪혔는데 유리가 산산조각났다. 다음 날 방문한 AS기사는 소비자 과실로 유상수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안내했다.
문제는 수리 비용. 강화유리만 교체가 불가능하고 문짝 하나를 통째로 갈아야 하기 때문에 무려 50만 원이 청구됐다.
작은 충격에도 박살이 나는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속적인 항의를 한 끝에 "이번에만 한시적으로 무상수리를 해주겠다"는 답을 받았지만 앞으로 '유리같은' 냉장고를 사용할 생각에 박 씨는 머리가 아프다.
그는 "다행이 이번에는 무상수리를 받았지만 앞으로 냉장고를 신주단지 모시듯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건지...."라며 한숨 지었다.
#사례2. 구입한 지 보름만에 컵에 부딪혀 산산조각
오는 12월에 결혼을 앞둔 박 모(여)씨는 최근 예비신랑이 혼수용으로 삼성전자 강화유리 냉장고(모델명 RS803G HME 1U)를 선물해줘 친정집에 설치해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입 보름째가 되던 지난 달 23일 아버지 손에 들린 컵이 냉장고에 살짝 부딪히자 강화유리가 산산조각났다. 당황한 박 씨는 AS센터에 연락했고 전후 사정을 들은 AS센터측이 내린 결론은 역시나 이용자 과실에 의한 유상수리였다. 문짝 교체비용은 23만 원이 청구됐다.
불과 구입 보름만에 작은 충격에 파손된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웠던 박 씨는 제조사 측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지속적인 항의와 하소연 끝에 얼마전 "구입 시기를 고려해 예외적으로 무상 수리를 해주겠다"는 답이 왔다.
박 씨는 "수리는 한번 해주겠지만 정책 상 '냉장고 강화유리 파손은 소비자 과실이고 부분 수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조사 입장이다"면서 "이렇게 부실한 강화유리 냉장고를 '충격에 강한 안전한 제품'이라고 광고하며 사용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 절대 깨지지 않은 유리?...공정상 이유로 부분 수리 안돼 수리비 폭탄
냉장고를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강화유리는 성형된 판유리를 최대 700℃까지 가열한 뒤 급냉각시키는 열처리과정을 거쳐 통상적으로 일반 유리에 비해 3~10배 내구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망치로 내려치지 않는 한 깨지지 않는다'는 일선 매장직원들의 호언장담이 무색할만큼 파손사고가 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
제조사들은 일반유리에 비해 강할 뿐이지 무조건 깨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매장 직원들이 성능을 과장하고 있을 뿐이란 설명.
한 업체 관계자는 "강화유리는 전면부에 가해지는 충격에는 강한 반면 모서리나 포인트 충격에는 약하다"면서 "충격의 분산 원리에 의한 것으로 전면 충격시 유리 전체로 충격이 분산되지만 측면은 충격 전달범위가 줄어들어 유리에 전해지는 충격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과도한 수리비. 강화유리 파손의 경우 대부분 이용자 과실로 진단돼 무상수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은 물론 강화유리만 부분 교체가 불가능해 문짝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터라 수리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냉장고 문짝 하나 당 평균 최소 20만 원에서 많게는 50만 원 이상 교체비용이 든다. 만약 양문형 냉장고 문짝 2개가 모두 파손됐다면 수리 비용으로만 최대 100만 원 이상의 금액이 청구될 수있다. 중고 냉장고를 구매하는 가격보다 오히려 높다.
이에 대해서도 제조사들은 공정 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강화유리도어는 도어와 강화유리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본드로 전면 밀착된 채 출시하고 있어 유리만 부분 교체가 불가능해 문짝 전체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도어와 강화유리가 벌어져 발생하는 뒤틀림 현상에 의한 수리 비용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지난 5월 기술표준원이 유리제 식기류에 대한 KS표준을 별도 제정하는 등 일부 제품군에선 강화유리 관련 안전기준이 있지만 냉장고를 비롯해 올해 초 한국소비자원이 안전기준 제정을 촉구한 샤워부스 강화유리는 아직까지 안전기준이 따로 없다.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제품 안전기준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이하 품공법)에 의해 관리하고 있는데 강화유리 냉장고는 아직까지 안전기준이 별도 제정돼있지 않다"고 전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건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