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정상회담 표지석 설치가 무산된 경위에대해 청와대가 오락가락 궁색한 해명에 급급,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는 당초 표지석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해명했으나 15일 김정일 위원장 이름없이 노 대통령 이름만 표기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당시 남측이 갖고 간 표지석이 북측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는 보도를 해명하며 남북 정상의 기념식수에 대비해 양 정상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을 준비해갔으나, 북측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하는 바람에 설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천 대변인은 하루가 지난 이날 브리핑에서 "담당 실무부서에서 정확하게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일부 사실과 다르게 설명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전날과 다른 설명을 했다.
천 대변인에 따르면 정부는 9월 초 공동식수와 표지석 설치 문제를 북측에 제안해 협의를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북측은 식수행사에 표지석을 설치한 전례가 없었고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표지석에 새긴 전례가 없다고 난색을 표명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측은 표지석 자체가 전례가 없다고 했다. 자신들이 표지석 설치 전례를 찾아봤더니 그런 기록이 아예 없다고 하더라. 물론 표지석에 이름 넣은 것도 없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측은 협의과정에서 기념식수를 할 경우 표지석을 설치하고 이를 남측에서 준비한다는데 동의했다. 다만, 표지석 문구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남측으로서는 양 정상의 이름을 새긴 표지석을 설치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북측은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뚜렷한 답변을 않던 북측의 입장이 전달된 것은 9월30일이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북측은 이날 평양에 파견된 정상회담 남측 선발대에 "아무래도 김정일 위원장의 명의를 넣는 것은 어색하니 노 대통령 단독명의로 하자"고 표지석 문구를 제안해왔고, 합의를 이뤘다는 것. 남측 선발대는 즉각 이 같은 내용을 청와대로 연락해왔다고 천 대변인은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하나된 민족의 염원을 담아, 2007년 10월 평양,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250㎏짜리 표지석을 만들어 평양에 가져갔다.
그러나 남측의 희망과 달리 10월4일 공동식수 현장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불참했고, 대신 김영남 위원장이 참석하는 바람에 표지석 설치가 무산됐다.
천 대변인은 "남북 양측은 `공동식수자가 김영남 위원장으로 바뀌었고 표지석이 주변경관과 조화가 안되니 설치하지 말고 추후에 협의하자'고 의견일치를 보고 표지석을 갖고 내려왔다"며 "양측 의전담당자들끼리는 물론이고 김만복 국정원장도 북측 고위인사와 협의를 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국정원과 북측의 협의를 통해 나무가 심어진 곳의 주변경관과의 조화문제를 고려해 당초 표지석보다 작은 70㎏짜리로 만들어 김 국정원장이 12월18일 방북해 설치했다는 것.
천 대변인은 "당초 양 정상 명의의 표지석 도안은 있었고, 거기에 맞는 크기의 돌을 준비했지만 새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날 해명을 둘러싼 `거짓 논란'에 대해 "사실관계를 잘못 알린 것은 죄송하지만 어떤 의도도 없었고 내부 확인과정에서 착각과 실수가 있었다. 거짓 설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노 대통령 단독 명의의 축소 제작된 표지석을 설치한 배경에 대한 논란과 관련, "표지석 크기는 대한민국 국격과는 무관하며, 축소된 표지석으로 국격을 격하시켰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며 "또 대통령이 방북해 정상회담을 하고 이를 기념하는 나무를 심고 대통령 명의의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은 의미있고 당연한 일로써, 마치 대통령 개인 이름 석자를 남기려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악의적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같은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표지석 설치 추진, 유보 및 재추진 과정이 명쾌하지 못한 구석도 없지 않다.
표지석 설치는 물론 문구까지도 남북간에 애초 합의가 이뤄졌다면, 김 위원장이 식수행사에 불참했더라도 노 대통령이 평양방문과 식수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10월4일 당일에 설치하지 않았는지, 또 문구상 차이도 없는 표지석인데 크기를 줄여서 다시 설치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북측 상층부에서는 애초부터 표지석 설치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10월4일 표지석 설치가 무산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12월18일 설치된 표지석 크기가 250㎏에서 70㎏로 축소된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또 천 대변인이 14일 정례브리핑에서 표지석 명의를 명백하게 틀리게 브리핑했고, 이 내용이 실시간으로 기사화됐음에도 청와대 유관부서에서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는 점은 임기말 청와대내 소통에 문제가 노출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 대변인은 잘못된 해명이 언론에 보도된 후인 이날 아침에서야 유관부서로부터 정확한 사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