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대의 안일한 현장판단과 형사과의 형식적 업무배당, 지휘부의 면피성 상황대처 등 악재가 두루 겹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 시스템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납치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건과 관련한 상세한 상황대처 매뉴얼의 정착 등 적극적 개선은 제2, 제3의 안양, 일산 사건을 막기 위한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구대 4부제 전환..기강해이 불렀나? = 부실수사의 빌미를 제공한 일산경찰서 대화지구대는 전체 57명으로 운영되며 낮 근무만 하는 관리반 2명을 제외한 55명이 13-14명 씩 한 팀을 이뤄 4부제로 근무한다.
주간근무(오전 9시-오후 7시)와 야간근무(오후 7시-다음날 오전 9시)로 나눠 4팀이 교대하는 식이다.
관리반이 있는 주간근무의 경우 순찰차(4대) 8명과 도보순찰 5-6명이 운영하며, 야간근무는 도보순찰 가운데 2명이 지구대를 지키는 체계다.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돌아가며 하는 데 야간근무 팀은 최대 이틀을 쉰다.
이런 근무체계는 지난해 7월부터 도입됐으며, 3부제 근무에 따른 피로도를 줄이고 일반 직장의 주 5일제 근무에 맞춘다는 취지였다.
대화지구대의 하루 평균 112신고는 30여건이며 경찰서로 넘겨져 사건화되는 건수는 30-4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초 정기 승진시험에서 합격해 경장으로 진급한 일산경찰서 직원 6명 가운데 5명이 지구대 소속일 정도로 본서에 비해 지구대의 근무여건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게 일반적인 내부 인식이다.
경기지방경찰청 모 지구대장은 "일산 초등생 사건과 관련해 직원들이 모두 업무과중에 따른 단순실수라기보다는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입을 모았다"며 "4부제로 편해진 근무가 오히려 기강해이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내 지역경찰은 지구대(20-70명) 113곳과 파출소(10-20명) 82곳, 가장 규모가 작은 치안센터 178곳 등이 운영 중이다.
시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치안센터는 그러나 9%, 16곳만 민원담당관 1명이 낮근무를 하며, 나머지는 종일 문이 잠긴 채 순찰차의 거점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이는 업무효율을 우선한 것으로 시민들의 치안 체감도를 낮추는 큰 원인 중에 하나라는 지적이 많다.
경찰 지구대와 비슷한 역할의 소방서 119안전센터는 대부분 2부제로 운영하며 24시간(오전 9시-다음날 오전 9시) 근무하고 24시간을 쉬는 체계다.
◇아동 사건 상황대처 상세 매뉴얼 필요 = 경찰청이 2005년 12월 발행한 '지구대장 매뉴얼' 제7장 '위기관리'에 따르면 지구대의 초동조치를 필요로 하는 중대사건을 ▲인질 ▲유괴 ▲폭발물발견 ▲집단폭력 등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또 제6장 '주요업무'에는 ▲무장공비.간첩 등 출현 ▲피랍 또는 테러 ▲무장탈영병 ▲독극물.독가스 살포 및 총기 난사 ▲외국인 관련 중요사건 등 17개 항목을 속보사항으로 규정하고 상황실장에게 신속히 보고토록 하고 있다.
지구대장이 상부에 즉시 보고해야 하는 중대사건과 속보사항은 그러나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과 같은 아동납치미수 사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속보사항 마지막 항에 '기타 다수의 경찰력 동원이 필요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 될 우려가 있는 각종 사건'으로 애매하게 포함, 지구대 직원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경기경찰청 한 관계자는 "실종.납치 사건과 관련해 일반 매뉴얼이 있지만 아동 사건과 관련해 구체적인 상황대처 매뉴얼은 부족하다"며 "대화지구대 팀원의 경우 납치미수로 처리하면 상황보고서를 올리는 등 향후 사건처리가 귀찮아 단순폭행으로 사건을 축소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아동 관련 사건의 상세매뉴얼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건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지구대 직원들은 형사와 교통, 정보 등 모든 경찰기능을 망라한다는 면에서 개별사건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수동적인 업무수행의 의미라기 보다 신속.정확한 대처를 위해 상세 매뉴얼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형사과 사건접수 체계도 '문제' = 경기경찰청은 부실수사 책임을 물어 일산서 형사과장과 대화지구대 직원들 외에 형사지원팀장을 직위해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형사지원팀장은 지구대로부터 사건을 접수해 형사과 각 팀에 배당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형사지원팀장의 경우 지구대가 작성해 온 피해자 부모 진술서에 '아이가 폭행당해 끌려갈 뻔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납치미수'로 판단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형사사건에 전문인 형사지원팀장이 지구대가 설사 '단순폭력'으로 발생보고서를 접수했더라도 사건의 성격을 정확히 판단해 강력계에 곧바로 넘겼다면 늑장수사는 면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형사지원팀장은 내근인 폭력계 폭력1팀에 사건을 배당했고, 폭력1팀은 통상처럼 배당 당일은 잔무 처리로, 다음날은 비번인 관계로 이틀 동안 사건을 묵혔다.
대화지구대 팀원들이 사건당일 현장에 과학수사팀을 불러 지문감식을 하면서도 지휘라인, 특히 형사과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과학수사팀에 의뢰했다면 어느 정도 사건의 심각성을 알았다는 의미인데, 통상적인 수사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과학수사팀을 부르면 의무적으로 지휘라인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문을 채취한 과학수사팀도 사건발생 이틀이 지난 28일에야 경찰청에 감식을 의뢰해 물의를 빚었으며, 이 부분에 대해 과학수사팀은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경기경찰청은 폭력1팀과 과학수사팀에 대해서도 감찰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책임을 물을, 마땅한 근무수칙 위반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휘부도 '허둥지둥' = 김도식 경기경찰청장은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31일 오전 11시40분께야 부랴부랴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 경기청장은 도내 경찰서장들을 소집한 정례회의 중에 기자실을 급히 찾았으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날 오후 현장방문과 궤를 같이 해 사건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았음을 짐작케 했다.
경기경찰청은 또 수사본부 설치 하루 만에 본부장을 일산서장(총경)에서 경기청 2부장(경무관)으로 격상시키고, 신고보상금도 500만원에서 반나절만에 1천만원으로 올리는 등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이 집중취재에 들어가자 수사본부도 주엽2치안센터에서 일산경찰서로 급히 옮기기도 했다.
본격수사 하루만인 31일 밤 용의자를 검거, 경찰 지휘부로서는 일정 부분 면피하게 됐지만 지구대와 형사과 직원들의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사건발생 당일 조기해결할 수 있었다는 지적은 면키 어렵게 됐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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