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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기상. 건강식 준비하고 운전해 유치원과 학교로 이동. 영어회화 수강에 이에 간단히 점심 먹고 다시 유치원과 학교에서 집으로…. 큰 아이 수학 과외 교사와 통화해 과외시간 잡고 유치원생 둘째의 영어회화 연습 파트너 되기. 인기 연예스타 매니저의 스케줄을 방불케 하는 이 일과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1인 多역을 소화하며 자신도 모르게 ‘슈퍼맘’이 돼 버린 우리 엄마. ‘극성 엄마’라는 낙인 정도는 아이들의 입시성공 앞에서 기꺼이 감내한다. 그러나 이리저리 바뀌는 교육정책과 몰아치는 사교육 열풍 앞에서 아이들만 힘든 게 아닐 터. ‘나’를 잃어버린 채 이리저리 뛰고 있는 슈퍼맘은 자유롭고 싶다. 헤럴드경제는 어버이날을 맞아 슈퍼맘 되기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긴급진단한다.
주부 박은우씨는 얼마 전 서울 망우동에서 중계동 아파트로 전세를 옮겼다. 이유는 재수생 아들 때문. 아들이 중계동 학원가 재수학원에 등록하기로 하면서 이사한 것이다. 학원에 등록하기 전 강사 정보와 중계동 학원가에 자녀를 보낸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의 조언은 기본. 박씨는 “강남 쪽으로 못 갈 바에야 이쪽(중계동)이 경쟁력 있다고 생각해 옮겼다”면서 “아들만 하숙을 시킬까 하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까 따라나섰다”고 말했다. 맹자 어머니도 울고 갈 우리나라 엄마들의 교육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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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어머니는 한 동네에서 무덤과 시장을 피해 이사다녔지만 우리네 슈퍼맘들은 좋은 학교, 좋은 학원을 찾아 ‘도(道)’ 단위는 예사로 뛰어넘는다. 예전에는 중산층 지역에 학원이 찾아갔지만, 요즘은 좋은 학원이 있는 지역으로 학부모들이 이동하면서 집값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서울만 보더라도 1970년대 여의도에서 시작된 교육열풍은 80년대 이촌동으로, 1980년대 말부터는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 전국 강사들이 몰려들더니 2000년에는 목동으로, 이젠 노원구 중계동에도 경쟁력 있는 학원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요리사에 운전기사에 제2외국어 코치까지
아이들이 다닐 학원과 학교를 고르고 나면 슈퍼맘들의 활약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4살, 9살 두 아이를 둔 주부 민경애씨의 스케줄은 스타의 매니저만큼 빼곡하다. 새벽에 일어나 두 아이와 남편을 학교와 회사로 보낸 후 집안일을 하다가, 점심 때 맞춰 돌아오는 둘째에게 밥을 먹인 후 체육학원에 데려다준다.
다시 집에 돌아오면 첫째가 영어학원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 둘째를 체육학원에서 데려와 학습지 방문교사와 공부하게 한 후 다시 큰애를 데려와 저녁을 먹이고 보습학원으로 실어 나른다. 민씨는 “애만 잘 된다면 이 정도는 고생하는 것도 아니다”며 “어차피 주변에 다른 엄마들도 다 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강화 발표 후 부모들의 머리는 더 아프다. 주부 정연진(37?경기 용인시)씨는 아침마다 유치원생 아들을 배웅한 후 인근 YMCA로 향한다. 영어회화 강좌를 듣기 위해서다. 대학 졸업 후 영어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정씨가 학원문을 두드린 것은 지난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유치원생 아들의 발음연습을 돕다가 “엄마 발음은 못 알아듣겠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정씨는 “쉬운 단어라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는 아이에겐 내 토종 발음이 이상했던 모양”이라며 “CD 등 보조교제가 있지만 아이의 영어공부를 옆에서 돕는 엄마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기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아이들의 영어 ‘연습상대’는 돼야 하는 엄마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백화점 문화센터나 YMCA 강좌, 영어유치원에서 따로 마련해준 ‘어머니 클래스’ 등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 함께 어학공부에 매진한다.
제2외국어 수강에 나선 엄마들도 있다. 신림동에 거주하는 주부 박하영(39)씨는 한 학원에서 중국어 지도사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남편 직장 때문에 1년간 중국에 있다 온 아이들(중1, 초2)에게 중국어를 잊지 않게 가르치려는 게 목적. 한우리GNS학원 관계자는 “40명 정도 뽑은 중국어 지도사 1기 과정에 주부들이 많이 찾아왔다. 대부분 자녀의 중국어를 직접 가르치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나마 아이 곁에서 학습을 도울 수 있다면 다행. 자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엄마들도 있다. 바로 직장에 다니는 엄마. 목동에 거주하는 한희정(36)씨는 “나처럼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어려워해도 바라만 봐야 하니 답답한 심정”이라며 “직접 봐주기 어려워서 목동의 한 주니어 어학원이 끝나면 아이를 바로 옆 J학원에 보내 2시간 더 영어공부를 시킨다”고 했다.
▶“슈퍼맘은 그만”…엄마들의 스트레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습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상담소를 찾아 ‘양육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영등포복지관 아동가족상담센터 황지연 상담심리전문가는 “학습에서부터 취미, 놀이 등과 균형을 맞추는 부분 등 아이들 교육에 너무 열심이다 보니 자신만의 시간도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며 “엄마들의 경우 아이들처럼 ‘근육이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틱 장애나 야뇨 등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 정도가 매우 높아 강박증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상담소를 방문한 한 주부는 두세시간마다 잠에서 깨며 늘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는 증상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언제쯤 해외에 내보낼까, 사립으로 옮길까 등 아이 교육 문제를 두고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 엄마들이 아이들 교육에 앞서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고 토로했다.
건국대병원 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자식을 부모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가 잘되면 내(부모)가 잘되는 것처럼 느끼면서 아이를 통해 자신의 꿈 등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슈퍼맘들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입시제도가 바뀌면, 영어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을까. 엄마들에게 가혹한 현실은 “슈퍼맘이 돼 피곤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영어학원을 나서는 어느 슈퍼맘의 자조 섞인 푸념이 돼 돌아온다.
유지현?김재현 기자(prodigy@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