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사 그렇더라도 50만위안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그냥 빼앗겨요. 경찰을 찾아가 보지 그랬어요. 광평이라는 양반 친구 중에 경찰이 있다면서요."
"안 그래도 그래보려고 했는데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어. 우리가 조금도 유리할게 없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어. 더구나 그쪽은 우리의 약점을 다 비디오에 담아뒀고. 더 중요한 건 이곳 타이완 경찰은 가능하면 폭력배들과 마찰을 빚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이야."
"민생 치안이 말이 아닐 텐데도 경찰들이 그런다는 말입니까?"
"내 그런 질문을 할줄 알았어. 그러나 여기 암흑가의 어깨들은 아직도 순진한 한국의 조직 폭력배들과는 수준이 달라. 먼저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 이외에는 일반인들을 절대 괴롭히지 않는다고. 그만큼 프로 의식이 확실하다고나 할까. 그러니 생각보다는 민생 치안이 괜찮은 편이고 경찰도 폭력 조직간의 싸움이 유혈로 번지거나 범법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확보할 때에 한해서만 단속에 나서는 거지."
"확실히 우리의 조직 폭력배들과는 좀 다르네요. 좋아요! 그럼 여기 폭력 조직에 대해 아는대로 좀 얘기해 주겠습니까?"
학창 시절 명성을 전국에 떨친 학생 어깨 출신으로 경찰 출입도 종종 해본 황기자는 이제 문호의 불행보다는 타이완의 폭력 세계에 더 관심이 끌리기 시작했다. 유능하지는 못했어도 어쨌거나 기자라는 직업 의식에서 오는 호기심의 발로였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고 문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왕 패밀리들에게 봉변을 당한 이후 광평에게 들은 거니까 상당한 근거가 있는 얘기야. 잘 들어둬."
"알았어요."
"맹자는 일찍이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는 말을 했어. 이건 뭘 말하느냐. 한번 혼란한 시대가 있으면 다시 평화시대가 온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야. 중국의 조직 폭력 역사도 그래. 사실을 한번 증명해볼까. 중국 최초 통일 국가인 진(秦)나라는 비록 15년이라는 단명에 그쳤으나 역사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부흥 왕조라고 부를 수 있어. 그러나 진시황의 아들 2세에 이르러서는 전국에서 터진 농민 봉기가 삽시간에 중국 대륙을 살육의 혼돈으로 몰아넣었지. 이후의 한(漢)나라 역시 마찬가지야. 당시의 폭력 조직이라 할 황건적의 난으로 나라가 망했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당(唐)나라 역시 마찬가지였어. 이른바 안사(安史)의 난으로 국가의 명운이 다했지. 이어 송나라와 원나라의 치세도 홍건적의 난이 재를 뿌려버리지 않았겠어."
"그 점에 있어서는 이후의 명(明)나라와 청(淸)나라도 마찬가지겠죠."
"그렇지. 명나라는 이자성(李自成)의 난,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등으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해갔지. 이제 내 말을 좀 이해하겠어."
"글쎄요, 좀 막연하네요."
황기자는 문호의 마음을 다소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신바람을 자극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의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문호는 황기자의 태도에 더욱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수천년에 걸친 일치일란의 순환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이 조직 폭력의 근간인 비밀 결사라는 특유의 전통을 만들어갔다는 얘기가 아니고 뭐겠어. 이 전통은 마침내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이루게 돼. 당시 중국인들은 유럽 열강의 침입에 저항하기 위해 수많은 비밀 결사를 만들어 이들과 충돌하기도 했고 혹은 거미줄같은 조직의 힘으로 마약, 매춘, 고리대금업 등에 진출해 지하경제를 완전 장악했지. 한마디로 야누스적 비밀 결사였어. 낮에는 애국적 혁명 투사, 밤에는 폭력단원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이들이 지금 타이완 폭력 조직의 원조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성을 지닌 이들 비밀 결사는 열강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는 19세기 말에 이르면 무려 3500여개에 이르게 되지. 거라오후이(哥老會), 싼디엔후이(三點會), 톈디후이(天地會)등은 당시 비밀 결사를 대표하는 막강한 세력이었지. 그러다가 이 비밀 결사들은 2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통합의 격량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돼. 작은 조직들이 큰 조직으로 대거 흡수된다는 얘기야. 그 과정에서 훙방(紅幇), 칭방(靑幇), 뤼방(綠幇)등은 특히 막강한 세력으로 부상했어."
"그거 이름이 간단하면서도 그럴듯 하네요. 홍콩의 싸구려 느와르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 아닙니까?"
"그럴듯한 정도가 아니라고, 이 사람아! 20세기를 전후해 상하이(上海) 일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지배한 이들 트로이카 폭력 조직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자네가 안다면 그런 소리는 못 하지. 잘 들어봐. 최근 광평이 권해서 읽은 관련 다큐멘터리 책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을 해 주지. 특히 매춘 쪽 얘기가 너무 흥미로워. 어떻게 그 당시 그럴 수 있었을까 싶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