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통신사업의 좌장인 이상철 부회장이 ‘탈(脫)통신’ 행보에 가속도를 붙이며 통신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올해 초 통합LG텔레콤 부회장으로 취임한 뒤 ‘통신사업을 버려야 산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 부회장은 지난 14일자로 회사 이름을 ‘LG U+(LG유플러스)’로 바꿨다. 사명에서 아예 ‘통신’이란 두 글자를 빼버린 것이다. 통합LG텔레콤이 올 상반기 중 사명을 바꾸기로 했다는 사실은 이미 예고돼 있었지만, 이 정도로 파격적인 이름이 나온 건 뜻밖이었다. 회사 안팎에서 ‘이게 통신 회사 이름이 맞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조차도 이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다. 회사 관계자는 “새 사명을 공모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통신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는 알파벳 T와C는 무조건 제외하고 했다”며 “그만큼 기존의 회사 이미지를 버리는 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고 말했다.
사명을 바꾼 직후 이 부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에 ‘이제부터 LG U+, 버림의 미학으로 새로운 전설을 만듭시다’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올렸다. 이 글에서 이 부회장은 “버림은 매우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며 때로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시의적절한 버림은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직원들에게 역설했다.10년 이상 사용한 ‘LG텔레콤’ 이름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만년 3위 사업자’라는 이미지를 깨뜨리기 위한 결단이었다는 것.
이 부회장은 애플 ‘아이폰’을 예로 들며 휴대전화 키패드를 과감하게 없애고 넓은 화면, 응용프로그램 위주의 아이폰을 탄생시킨 것이 바로 ‘버림의 미학’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LG U+의 당면과제로 꼽고 있는 ‘탈통신’도 결국 기존의 것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이다.‘통신을 버리자’고 외치는 이 부회장은 사실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거물이다. 미국 듀크대 공학박사 출신으로 한국통신프리텔과 한국통신(현 KT) 사장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 광운대 총장을 지냈다. 10년 만에 통신업계로 돌아오면서 “IT 강국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한가운데쯤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위상이 다시 사그라지고 있는 게 매우 안타까워서”라고 말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탈통신’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아 IT 강국을 되찾는 데 일조하겠다”는 꿈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국내 통신업체들이 당장의 돈벌이에 급급해서 미래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통신은 사양산업’이라고 말하고, ‘통신을 버리자’고 한다.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가 최근 모바일 인터넷 혁명에 뒤처진 원인에 대해서도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너무 만족하면서 무의미한 숫자 싸움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일례로 통신 3사가 매년 8조원 이상을 마케팅비로 써왔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래왔냐고 이 부회장은 반문한다. 그 반만이라도 기술 개발에 썼다면 국가산업이 발전하고 애플을 뛰어넘는 기업도 나왔을 것이라는 탄식도 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탈통신’은 통신사업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난 3월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포럼에서도 이 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존 것을 버린다는 게 꼭 다른 영역으로 가라는 것이 아니다. 하고 있는 영역에서 마인드만 바꿔도 블루오션을 만들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주창한 ‘탈통신’이란 기존 통신영역이 넘볼 수 없었던 의료, 교육 등의 분야에 통신을 접목시킨 새로운 장르의 창조이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통신과 이종산업 간 컨버전스, 유무선 컨버전스, 통신과 솔루션 간 컨버전스 등 20여개의 ‘탈통신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