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 속에 2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안전'을 외쳤다.
"2008년 1월 7일 이천 '코리아냉동창고'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40여명의 건설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건설현장의 상황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루에 2명꼴로 산재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건설노동자들의 위험천만한 현실은 제자리입니다. 이들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인 '안전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오늘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 건설산업연맹, 안전기원제 개최…노동자 '안전보장' 촉구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건설산업연맹)은 7일 오후 2시30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건설 공사현장 앞에서 '2011 건설노동자 안전기원제'를 개최했다.
기자가 도착했을 당시 200여명의 건설산업연맹 회원들은 차가운 얼음바닥 아래, 담요도 아닌 은박 돗자리 위에 앉아 행사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것인지 하나같이 코 끝이 빨개진 모습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에는 추운 기색이 묻어나지 않았다.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건설현장 안전보장'이 바로 그것.
행사의 사회를 맡은 김진배 건설산업연맹 사무처장은 "매년 7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찾았던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며 "그들은 모두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일한 죄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우리 동료들이 작업 중 추락사하거나 불에 타 죽어도 그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어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가 반열에 올라섰지만 산업재해율은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며 "하루 빨리 이 땅의 모든 건설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고, 다치지도 않는 건강하고 안전한 건설현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전쟁을 대비해 꾸려진 군대에서도 하루 2명씩 죽어나가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데 세상의 어느 부모와 가족이 자신의 혈육을 공사현장에 내보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 '안전기원제'는 전국 각지의 건축, 토목, 플랜트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동시에 발주처와 원청건설사들이 우리 건설노동자들을 안전관리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인정하도록 하는 안전권 쟁취 투쟁을 선포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최근 구제역 창궐로 소·돼지가 강제로 살처분되고 있는 것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건설노동자들이 1년에 수백명씩 죽어 나가도 '나 몰라라'하던 정치인들이 소·돼지가 죽어나가자 가축법 개정안 처리를 전제로 한 원포인트 국회까지 열기로 했다"며 "가축은 억울하게 죽으면 안 되고 노동자는 깔려죽고 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어 말해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 "단물을 빨아 먹힌 우리에게도 피는 솟는다"
이날 '안전기원제'의 초헌관으로는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이 나섰다. 백 위원장은 향불을 점화하고 재배 한 뒤 제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어 축관을 맡은 김진배 사무처장이 맡아 축문을 읽어 내려갔다. 축문은 최근 몇 년간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건설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앞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었다.
이날 안전기원제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이날 자리에 모인 2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추모노래로 민중가요인 '건설의 노래'를 제창했다.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건설 공사현장 인근에 힘차지만 애달픈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저 붉은 태양에 너와 나의 청춘을 묻고 뜨거운 어깨 철탑에 매어 살아온 세월~ 저 자본가들이 쓰다버린 폐기물처럼 단물을 빨아 먹힌 우리에게도 피는 솟는다……끝내 우리가 세울 노동자 세상을 위하여 이 땅 건설의 힘으로 우뚝 서라 동지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류세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