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우리를 대담하게 만들고 사고와 장애물은 우리를 전진하게 만드는 자극제다"
이는 최초로 남극을 정복했던 로얄 아문센이 했던 말이다. 후대는 아문센은 기억하지만 그와 경쟁했던 영국의 로버트 F. 스콧은 알지 못한다. 경쟁자인 스콧의 존재가 없었다면 아문센의 남극정복도 미뤄지거나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
이번 주 통신업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아이폰을 두고 벌인 SK텔레콤과 KT의 AS경쟁이었다.
KT가 아이폰을 국내에 들여온 이후 기존의 국내 제조사들과 전혀 다른 방식의 AS에 대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았지만 그때마다 KT는 "애플의 원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대왔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아이폰을 출시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이폰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던 KT는 후발주자인 SK텔레콤의 '후한' AS정책에 맞춰 부랴부랴 전략을 수정해 내놨다.
정부기관에 불려 가서도 '당일 교환'이 애플의 AS정책이라며 발을 뻗던 KT가 SK텔레콤의 '7일 교환'이 나오자 바로 '14일 교환'으로 규정을 바꿨다. 그동안 소비자들의 빗발치는 요구, 국가권익위원회의 권고에도 끄떡않던 것을 감안한다면 '경쟁'이 가지는 파워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를 통신비 인하 문제에 대입하면 어떨까?
요즘 고액의 정액요금제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 통신비가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8%를 넘어가면서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다. 1가구당 휴대폰 요금이 10만원을 풀쩍 넘는다. 하지만 통신3사는 추가적인 인하 여력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방통위 또한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꽉막힌 상황을 돌파할 카드는 결국 경쟁밖에는 없다. 하지만 이미 통신3사의 카르텔이 견고히 자리 잡은 이상 새로운 자극이 없이는 제대로 된 요금경쟁이 일어나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신요금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요금을 정하면 나머지 두 통신사가 그보다 약간 낮은 선에서 요금을 결정하는, 사실상 담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부나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압박해야 마지못해 요금을 조금씩 내리는 시늉만 할 뿐 현재 구조에서 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는 요원하다.
요금폭탄을 막는데는 '경쟁'만한 약이 없지만 문제는 정부가 그 약을 처방할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지난달 요금 경쟁을 촉발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4이동통신사 한국모바일인터넷(KMI)이 당국의 승인불허로 또 다시 침몰했다. 1차 실패에 이어 2차 도전이었지만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KMI는 무제한 데이터 요금 2만원 인하를 기치로 내걸었다. 실현 가능성을 당장 판단할 수없지만 '경쟁자'가 등장함으로써 기존 사업자들을 압박하는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KMI가 이번에 획득한 허가심사 점수와 주파수 할당심사는 각각 100점 만점에 66.545점, 66.637점을 기록했다. KMI가 4개월간 절치부심 보완했지만 1차 심사때와 거의 비슷한 점수다. 기준점수인 70점에 단지 3~4점 모자란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메워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KMI의 실력은 점차 나아지지만 웬일인지 그에 대한 방통위의 눈높이도 덩달아 높아져만 가기 때문이다. 4개월의 보완작업을 거치며 망 구축 실행계획까지 마친 상태임에도 불구, 1차 심사 때와 별 차이 없는 점수를 준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심사위원 중 절반 이상이 1차 때와 같은 사람인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업자를 진입시켜 통신시장의 경쟁을 활성화시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있는지에대해서조차 의문이 든다.
통신사업은 대규모 네트워크 투자비용 탓에 고정비용이 높아 신규사업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분야다. 더구나 통신3사가 유선통신사들을 합병하면서 덩치가 커진 탓에 웬만한 중소기업들이 모인다 해도 상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듬직하고 투자를 담보할 수 있는 업자'가 백마타고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듯 보인다. 통신요금 인하 요구가 나올 때마다 방통위는 다른 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 자연스럽게 요금이 내려갈 것이라 천명했다. 하지만 KMI의 연이은 실패는 방통위의 공언을 무색케 한다.
KMI가 중소기업 연합군인 점을 꺼리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부가 논란이 이는 '초과이익공유제'까지 내세우며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중소기업들의 통신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어떠한 배려도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배척하는 모습니다.
KMI는 이에 굴하지 않고 3수에 임한다는 각오를 다시 다지고 있다.
공권력을 통한 가격인하 압박이 효과가 없음은 이미 기름값등 여러분야에서 입증됐다. 정부가 할 일은 요금을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경쟁 환경을 조성해주면 된다. '경쟁'이 박터져서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요금을 '경쟁적으로'내리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biz&ceo뉴스/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현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