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어떤 사물 혹은 사건을 깊이있게 알지 못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 아냐?"라며 되묻는다. 우리는 또한 '당연'이라는 말도 즐겨 쓴다. 위와 동일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줄로 알았어"라고 말끝을 흐린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사건 중 '원래부터 당연히' 그랬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건 왜 이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거나 살짝만 돌려 보면 의외로 쉽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간단히 예를 들면 궁궐에 있는 잔디밭이 그렇다.
역사학을 전공하다보니 지인들과 가까운 궁궐에 놀러 가면 이것저것 설명하게 될 때가 잦다. 그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궁궐에는 원래 잔디밭과 석탑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원래 조선시대 궁궐에는 잔디밭이 없었다. 일제가 들어오면서 전각을 하나둘 없애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팔았는데 지금의 잔디밭이 있는 자리는 당시 전각이 있던 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잔디를 사람이 기거하는 울안에는 심지 않고 오직 무덤에만 사용했기 때문에 일제가 전각 자리터에 잔디를 심은 이유는 조선왕조는 이제 죽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궁궐에 부처님의 사리가 담겨있는 석탑을 전시한 이유도 유교국가인 조선을 비하하기 위함이었다.
궁궐에 가면 전각과 조화롭게 펼쳐진 잔디밭이 너무나 '당연'하게 그 자태를 뽐내지만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당연'하지 않은 것을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양 오해하는 경우는 곳곳에 널려 있다. 이는 최근에 방통위·SK텔레콤이 합작하여 내놓은 통신비 인하안도 마찬가지다.
지난 2일 방통위가 제시한 '이동통신 요금부담 경감을 위한 정책방안'에는 기본료 1천원 인하와, 월 문자 50건 무료제공, 선택·조절형요금제 출시 등이 담겨있다. 이중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기본료 1천원 인하안이었다.
방통위는 원래 지난달 말 통신비 인하안을 발표하려 했으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하안이 필요하다"는 한나라당의 반대로 미뤄졌다. 그 후 인가사업자인 SK텔레콤과 일주일간 고심해 추가된 것이 바로 기본료 1천원 인하안이다.
이 발표내용을 들은 소비자들은 들끓었다. 각종 포털사이트, SNS 등에는 "4~5만원의 휴대폰 요금 중 고작 1천원 인하해 주는 것은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는 성토의 글들이 올라왔다. 소비자들이 더 기막혀 하는 것은 통신사들이 기본료 1천원 내린 것에 대해서 너무 힘들다며 불평하고 있는 점이다.
통신사 측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5천만명의 휴대폰 가입자가 기본료 1천원씩만 인하해도 통신사 입장에서는 연간 6천억원의 손실이 생긴다는 것은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분명하다.
하지만 통신사들의 주장은 1만2천원의 기본료가 '원래'부터 '당연'히 있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했을 때에만 말이 된다.
기본료는 원래 시장 초기 통신망 기간시설 등 막대한 설비비 재원을 안정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즉, 투자비용 회수가 끝난 지금은 충분히 낮출 수 있고 '당연'히 낮춰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통신사들은 여전히 한 사람당 매월 1만2천원을 기본료라는 명목으로 당연한 듯 걷고 있고 이는 통신3사를 합쳐 8조7천억원에 달한다. 다시 말해 연간 8조7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이 별다른 명목 없이 통신사들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료 1천원 내리면 연간 6천억원의 손해를 본다고 징징대는 통신사들은 그동안 매년 8조7천억원에 달하는 공짜 용돈을 받아왔던 것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 스스로 번 돈으로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부모를 봉양하지는 못할망정 용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용돈액수를 조금 내리려 할 때마다 힘들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다.
우리나라의 통신비는 외국에 비해서 상당히 비싼 편이다. 이는 통신사들이 기본료 이외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이상 이익의 상당부분을 국민이 주는 용돈에 기대지 말고 자생할 수 있을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 양질의 상품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마이경제뉴스팀/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현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