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공적자금을 받은 서울보증이 8조원이나 되는 부채를 뒤로한 채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는 대규모 감면조치를 발표하기까지 금융위나 예보와 사전 조율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큰 문제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물론 서울보증측은 예보나 금융위에 사전 보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금융위 및 예보주장대로 그게 아니라면 금융정책의 위계질서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26일 금융계에 따르면 이번 대규모 감면조치와 관련, 절차상의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서울보증보험 측은 "오래된 채권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부채상환에 문제가 없고 사전에 예금보험공사와 금융위원회에 보고 했다"고 밝혔지만 예보 등 당국의 주장이 일부 엇갈려 주목된다.
이번 '특별채무감면' 논란은 김병기 서울보증보험 사장이 지난 2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생계형 서민 채무자 19만명의 연체이자를 면제하고 원금 30%를 감면해 이들이 신용관리대상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특별채무 감면대상은 서울보증이 대출보증을 한 86만3193명 중 연체기간이 10년 이상인 19만327명이다.
이들은 주로 신원보증보험 채무자, 생업 종사를 위해 자동차를 할부로 구매한 채무자, 소액대출 및 생활안정자금 채무자로 총 8300억원의 채무 중 약 3천억원의 감면혜택을 받게 된다.
서울보증보험은 내달 1일부터 12월말까지 특별채무감면을 신청한 자에 한해 심사를 거쳐 연제이자 면제와 원금의 최대 30%를 감면할 방침이다. 중증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원금의 최대 50%를 감면할 계획이다.
또 채무자의 변제능력에 따라 감면액을 제외한 나머지 원금에 대해 최대 5년까지 분할상환토록 하고, 분할변제가 시작되면 다른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신용회복을 해줄 예정이다.
서울보증보험의 특별감면 조치에 대해 금융계는 다소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보증보험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예보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12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으로 현재 예보가 9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그간 서울보증보험은 예보에 3조7천여억원을 상환했지만 아직 8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갚지 못한 상태다.
상환기간이 특별히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한 일반 금융기관이 금융위나 예보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고 19만명의 채무를 일부 감면해 주는 게 적절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번 특별감면대상 중에는 채무를 상환할 의지가 없거나 중복채무자가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성실하게 채무를 갚아왔던 다른 채무자들과의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로 골치를 않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보증보험이 '선심성 조치'로 보조를 맞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보증보험 관계자는 "개인경제생활자나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채무감면 제도는 이미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이번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대상범위를 한정적으로 확대했다"며 "상환이 어려운 서민취약계층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상환의지를 갖고 빚을 갚아나가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이점이 있고 생계형 채무라서 금액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적자금 상환 계획에 대해 "특별감면 대상은 오래된 채권으로 재무제표상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받지 않더라도 자산이 줄거나 기업 가치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수익구조를 튼튼하게 하고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내 공적자금을 계속 상환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보증보험 관계자는 "특별감면 계획에 대해 예보 등에 사전에 보고했다"며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서울보증보험은 예보의 MOU관리 대상으로 예보는 물론 공자위에도 '특별채무감면' 내용에 대해 사전에 상세한 보고를 하거나 통지한 적은 없다"며 "공적자금 회수에 대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가 관건인데 10년 이상 오래된 채권이고 정부에서도 삭제한 책권이어서 서울보증이 자체판단으로 보고를 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예보 관계자는 "신임사장이 취임 후 기자간담회를 연다는 내용만 보고 받았을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못했다"면서도 "채무관계 내용은 서울보증보험 경영진이 결정할 고유 판단사항으로 이를 사전에 반드시 보고해야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이 투입돼도 경영상황이 즉각 좋아지지는 않기 때문에 특별히 상환기간을 정하지 않고 향후 안정화되면 당기순이익이 나고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매각을 진행한다"며 "과거 서울은행이나 조흥은행 같이 우리금융지주와 서울보증보험도 회사가 정상화되면 매각절차를 밟아서 공적자금을 회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재로선 사전 보고여부와 관련, 서울보증측과 금융당국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예보 및 공자위 관계자 말대로 사전 상세보고를 받지 않고 서울보증 독단으로 취한 조치라면 서울보증이나 예보, 금융위 모두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서울보증이 공적자금 조기상환을 뒤로한 채 국민들에게 진 빚은 갚지 않고 선심성 정책에 더 많은 공을 기울인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금융위와 예보도 이런 논란가능성이 있는 정책이 발표될 때 까지 뒷짐만 지고 있었다면 '무능한 기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실제로 금융위 일부 관계자는 서울보증이 사전 보고를 하지 않은 것과 관련, 그 배경이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금융위 관계자는 사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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