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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구겨진 양복, 그리고 워런버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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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구겨진 양복, 그리고 워런버핏
  •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10.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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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20분 대구국제공항. 15인승 전용기 ‘걸프스트림 5’가 착륙한 지 10분이 지나도록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석간 마감시간에 쫓기는 기자는 슬슬 초조해졌다. 대구텍 관계자에게 “전용기까지 타고 온 분이 절차를 밟을 것도 없을 텐데 왜 이리 안 나오느냐”고 물었다. “수행원들의 도움을 뿌리치고 자기 짐을 손수 챙기고 있어 지체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구시에서도 외곽인 달성군의 한 작은 기업 구내식당. 내로라하는 금융계ㆍ재계 인사들이 몰렸다. 그 유명한 ‘워런 버핏과의 오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다. 대구텍 관계자는 “내빈의 수준을 맞추느라 뷔페 음식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정말 맛있었다. 요리 하나라도 더 맛보려 테이블들을 건너다니던 기자의 눈에 문득 버핏 회장이 먹던 음식이 들어왔다. 국내 유명인사들의 사진 촬영 요청으로 분주한 버핏 회장은 그 훌륭한 뷔페 음식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세계 3대 갑부가 주방에 특별 주문해 먹은 음식은 ‘햄버거’였다. 기자회견 테이블에는 그가 투자한 코카콜라 캔이 놓여 있었다. 질 좋은 연어 고기로 가득한 기자의 입이 부끄러워졌다.

#세계 최고 자산가의 패션 아이콘은 어떨까. 관찰해봤다. 오랜 비행 끝에 한국에 온 것도 아닌데 그의 양복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다. 상의의 뒷트임 부분이며 바지의 무릎 뒷부분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체구에 비해 펑퍼짐해 보이는 투 버튼의 양복은 한눈에도 80년대 스타일이다. 감색 양복인 듯한데 군데군데 빛이 바랬다. 신발은 광택을 잃은 지 오래다. 뒷굽은 발 바깥쪽 닳음이 심해 당장 수선을 맡겨야 할 수준이다. 갈색 뿔테 안경은 그의 코를 짓눌러 안경자국을 냈다. 연방 굽실거리며 버핏에게 사진 한 장 찍자고 사정하던 모 시중은행 부행장의 허리에는 명품 마크가 크게 붙어 있었다.

워런 버핏의 6시간여 짧은 방한을 취재하면서 느낀 그에 대한 단상은 ‘참 고집스런 할아버지구나’였다. 화려한 전용기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을 듯한 햄버거와 콜라, 구겨진 양복과 구두. “기술주는 잘 몰라서 투자하지 않는다”는 버핏. 세상 사람들이 ‘어질고 총명해 성인(聖人)에 다음가는 사람인 현인(賢人)’으로 버핏을 존경하고 칭송하는 이유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윤정식 기자(yj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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