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재직 시절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전달받았다가 돌려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고 '삼성 이건희 불법규명 국민운동'이 19일 공개했다.
참여연대 등 6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민운동은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비서관이 2004년 1월 평소 알고 지내던 삼성전자 법무실 소속 이경훈 변호사를 통해 현금 500만원이 들어있는 명절 선물을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2003년 9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에 임명된 이 전 비서관은 2003년 12월20일부터 청와대 비서실 조직개편에 따라 종전 법무비서관과 민정2비서관을 통합한 새 법무비서관 보직을 맡았다.
이 전 비서관의 진술내용에 따르면 그는 보직이 바뀐 직후 이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명절에 회사에서 내 명의로 선물을 보내도 괜찮겠나"라고 물어봐 한과나 민속주 등 의례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해 이를 수락했다.
이 변호사는 1996년께 서울 도봉구 창동 삼성아파트 주민들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소음진동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각각 상대방 측 변호사로 법정에서 자주 만나 친분이 생긴 사이라고 이 전 비서관은 전했다.
설 연휴 직전인 2004년 1월16일께 자신이 일하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선물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이 전 비서관은 연휴 뒤인 1월26일 집으로 배달된 이 변호사의 선물을 뜯어보고 책처럼 포장된 이 선물에 돈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전 비서관은 "당시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차떼기가 밝혀져 온 나라가 분노하던 와중에 당사자 중 하나인 삼성이 청와대에서 반부패제도개혁을 담당하는 비서관에게 버젓이 뇌물을 주려는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집사람에게 '삼성이 간이 부은 모양'이라고 하고 이 사실을 폭로할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비서관은 사건의 일각인 '뇌물꼬리'를 밝혀봤자 이 변호사라는 꼬리만 자르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될 것을 우려해 증거 사진만 찍어두고 이 선물을 이 변호사에게 돌려줬다고 국민운동은 전했다.
국민운동이 공개한 증거 사진을 보면 이 선물은 책 상자 정도의 크기였으나 포장지 안에는 책이 아니라 100만원 단위로 묶인 현금 다발 5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이 전 비서관은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를 보며 당시의 일이 매우 조직적으로 자행된 일이며 매우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적절한 시기에 내 경우를 밝힐 것을 고민하다가 모든 경위와 증거를 국민운동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국민운동은 이 전 비서관의 제보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통해 밝힌 사실이 단지 주장이 아닌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뚜렷한 증거이자 삼성의 뇌물 제공이 검찰만이 아닌 권력의 중심부에 이르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라고 평가했다.
국민운동은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혐의자들을 소환 조사해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단호하게 벌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엄정한 수사를 위해 특검법을 정기국회 폐회 전에 제정할 것을 정치권에 다시 한번 호소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