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는 후보 시절 표방한 대로 중도우파적 경제철학을 갖고 있어 참여정부 5년 간 논란이 지속된 분배 우선의 경제정책은 더 이상 내세우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또 정부 부처도 대부(大部).대국(大局) 체제로 축소하는 등 경제부처 조직의 변화를 예고한 바 있어 정부 부처들은 새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이 당선자의 경제 공약과 상당히 방향이 다른 참여정부의 대기업.세제.부동산 정책 등을 담당했던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기존 정책의 기조를 통째로 바꿔야 할 가능성이 커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종부세.금산분리 원칙 깨진다
재경부는 이 당선자가 손봐야 한다고 공언한 종합부동산세를 앞으로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최근까지 부처 홈페이지에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연재하는 등 강력한 '뚝심'을 보인 바 있어 언제까지 이 입장을 고수할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지난 17일 핵심 간부회의에서 앞으로 조직 개편과 정책기조의 변화 등으로 힘든 시간이 오겠지만 재경부의 입장이 기본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면 당선자 진영을 설득해야 한다는 취지의 당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이 당선자가 종부세 완화 입장인 것은 알지만 어떻게 뜯어고치겠다고 상세히 언급한 것은 아니어서 상황을 좀 두고 봐야 한다"면서 "공약집을 꼼꼼히 읽어보고, 인수위가 구성되면 그쪽과 얘기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대통령을 설득해보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양도세 및 종부세 강화, 재건축 규제 등을 담은 강력한 부동산 정책과 이 당선자의 유류세 인하를 포함한 대규모 감세 등은 출발점 자체가 달라 변화는 불가피하다.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지배를 방지하는 금산분리 원칙도 변화가 예상된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그동안 "선진국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산업자본의 진출을 허용하면서도 은행에 대한 진출은 엄격하게 막고 있는 이유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금산분리 원칙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금산분리의 고집은 외국인에 비해 국내자본을 역차별할 수 있다면서 금산분리를 완화하되 사후감독을 통해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최근 삼성 비자금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재벌그룹의 금융기관 소유는 투명성 등에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은 만큼 금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어떻게 달랠지가 관건이다.
아울러 현재의 재경부 장.차관이 참여정부와 함께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 고위직들의 줄서기도 우려되고 있다.
특히 권 부총리가 간부회의에서 함부로 경거망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져 이미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에 반대해 왔던 고위직들의 물밑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대운하 반대에서 찬성으로?
건교부는 경부운하 건설과 관련해 태스크포스에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결론 내렸기 때문에 앞으로 당선자 측과의 의견 조율이 난감한 상황이다.
건교부는 이와 관련, 태스크포스가 검토한 운하의 노선과 당선자가 제시한 노선이 달랐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번복할 수도 없고 공약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부운하 건설로 건설경기가 살아나면 건교부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건교부 관계자는 "당선자가 건설업을 잘 이해하고 있고 서울시장 경험도 있기 때문에 현실에 맞는 건설교통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
대기업과 경쟁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그동안 추진해왔던 주요 정책들의 노선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면서 향후 인수위의 활동이나 새 정부 정책기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정위는 그동안 기업들의 각종 불공정행위를 조사해 제재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해온 만큼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친(親)기업'으로 설정되면 공정위의 위상과 역할이 상당 부분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신 이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그동안 밝혀온 공약과 국정운영 원칙에 '자율과 경쟁의 원칙'이 담겨있는 만큼 공정위의 위상과 역할이 크게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책기조가 다른 부분은 향후 업무보고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해나갈 것"이라면서 "향후 조사부문보다는 정책과 규제완화 부문의 기능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대부분이 경제가 발전할수록 경쟁당국의 권한을 강화하고 역할도 확대하는 추세인 만큼 앞으로 새정부 출범 전까지 공정위 역할의 중요성을 설파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만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처럼 당선자의 공약내용이 현 정책과 다른 부분은 앞으로 인수위나 당선자에 대해 정책내용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보완되거나 수정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획예산처는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재정운용상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5년간의 중기재정운용계획에 예산배분의 틀이 정해져 있는데다 한나라당도 복지.교육.국방 등의 예산이 갈수록 증가하는 세계적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산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성장을 중시하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참여정부의 정치적 색깔이 비교적 강한 균형발전예산과 통일예산 등은 줄어들고 연구개발(R&D) 예산은 참여정부에 비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지역균형발전 정책 수정 불가피
산자부는 기존 정책방향 가운데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기조 수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나친 수도권 집중 문제는 앞으로도 규제가 이뤄져야 하지만 지금처럼 해당 기관의 의사와 여건을 묻지 않고 이뤄지는 강제적 공기업 이전조치나 최근 국회 입법과정에서 벽에 부딪힌 발전수준별 4단계 차등지원 방식 등은 어떤 형태로든 전환의 모색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내부에 팽배해있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유럽연합(EU)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낙후지역에 대해 지원을 늘려주는 것은 필요한 정책"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자부는 또 조직개편과 관련, 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응 작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농림부는 일단 지금까지 알려진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으로 미뤄 현재의 농업 정책 기조가 급격히 바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농업 10개 공약 가운데 '농업인 기본적 소득 보장' 부분은 2010년 시범사업이 시작될 '농가소득안정 직불제'와 맥을 같이하고, '향후 5년간 쌀 목표가격 유지 및 80㎏당 17만원 이상 보장'도 현재 여.야 구분없이 쌀 목표가 동결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큰 갈등의 소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농업인 자산을 농지은행에 신탁, 경작은 계속하되 부채 및 이자를 동결하고 20년내 분할 상환토록한다'는 당선자의 공약 역시 현재 농지은행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경영회생지원 농지매입 사업'과 본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식품산업 업무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얼마 전 농산물유통국의 명칭을 농산물유통식품산업국으로 바꾸고, 현 식품산업과도 식품기획과와 식품진흥과로 나눠 본격적으로 식품산업 육성에 나선 농림부의 행보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당선자가 그동안 밝혀온 '농업진흥지역내 토지이용 제한 등 농지 관련 규제 대폭 완화'나 '새만금토지 산업 활용 비중 확대' 등의 견해는 농지 보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측과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미 쇠고기 협상의 경우, 여론 부담 등을 고려해 일단 현 정권과 다름없이 "정치와 관계없는 기술적 검역의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개편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해양수산부는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중 딱히 해양부 관할이 없어 고심중이다.
해양부는 건교부 관할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의 경우 선박이나 물류의 문제이기도 한 만큼, 이 구상이 어디로 흐르는 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앞으로 시급히 조직위원회가 세워져야 할 2012년 여수세계엑스포나 남북수산협력,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의 뒷수습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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