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에서 대규모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가 일어난 데 따른 소비자들의 불신이 여전하고 지난해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 이후 판매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지면서 은행들이 신규 펀드 취급을 꺼리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법인 투자자 중심의 증권사들은 사모펀드 사태 영향을 크게 받지 않으며 지난해 펀드 판매 잔액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 은행·증권 판매잔고 격차 더 벌어져... 증권사 550조 원-은행 90조 원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은행 펀드 판매잔고는 90조3328억 원으로 전년 대비 7.2% 감소했다.
6대 은행 중에서는 기업은행을 제외한 5개 은행 모두 판매잔고가 줄었다. 지난해 말 기준 펀드 판매 잔고가 가장 많은 KB국민은행(행장 허인)은 9.7% 감소했고 신한은행(행장 진옥동)과 하나은행(행장 박성호)도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다.

특히 농협은행(행장 권준학)과 우리은행(행장 권광석)은 전년 대비 판매 잔고가 10% 이상 급감하면서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기업은행(행장 윤종원)은 지난해 말 기준 펀드 판매 잔고가 9조1679억 원으로 유일하게 증가했다. 다만 이는 지난해 기업은행이 정부 정책형 사모펀드에 약 7400억 원 가량을 추가 설정한 것으로 이를 제외하면 전년 대비 비슷한 수준이었다.
반면 증권사 판매는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증권사 펀드 판매잔고는 전년 대비 14.8% 증가한 550조1945억 원에 달했다.

펀드 판매잔고가 많은 상위 5개 증권사 중에서는 미래에셋증권(대표 최현만)이 전년 대비 36.5% 증가한 72조8759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미래에셋증권은 기관과 대형법인 거래액이 늘었고 공모펀드의 경우 TDF 중심의 퇴직연금 펀드가 각광을 받으면서 판매 잔고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NH투자증권(대표 정영채)과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도 25% 이상 판매잔고가 급증한 반면 신한금융투자(대표 이영창)는 법인 자금이 크게 감소하면서 역성장했다.
◆ 개인비중 높은 은행, 사모펀드 사태 직격탄
은행 펀드 판매잔고가 지속 감소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사모펀드 사태 이후 은행 펀드 판매가 급속도로 냉각된 탓이다.
대형 은행에서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중단이 발생하면서 은행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은행 채널을 통한 펀드 판매가 현재까지 위축되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1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늘리고 고난도금융투자상품 판매원칙을 세우는 등 투자자보호 강화에 나서는 등 규제가 강화된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 3월부터는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펀드 판매 절차가 더욱 복잡해지기도 했다.

그 결과 개인투자자 펀드 판매 급감으로 이어져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의 개인 펀드판매 잔액은 49조5756억 원으로 전년 대비 약 15%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증권사의 개인 펀드판매 잔액은 7.3% 증가한 44조1735억 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증권사 펀드 판매잔액 역시 사모펀드 사태가 터진 2020년에는 급감했지만 지난해 회복한 모습이다.
은행과 증권사 간 개인 펀드판매 잔액 격차도 같은 기간 17.1조 원에서 5.4조 원으로 급감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올해 개인 판매에서 은행이 증권사에 추월 당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펀드 판매에 있어 법인 비중이 90% 이상이라는 점에서 사모펀드 사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 법인을 중심으로 펀드 판매잔액이 지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태에서 증권사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지만 증권사는 수탁·운용 파트상의 문제도 있었다면 은행은 오롯이 판매 창구로서의 문제로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판매채널로서는 은행이 좀 더 타격을 입었다"면서 "지난해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모나 간접상품에 관심이 생기면서 사모펀드 사태로 인한 감소분을 충분히 상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더욱이 은행 판매 채널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 수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금융소비자보호재단이 펀드판매 1000억 원 이상·계좌수 1만 좌 이상인 27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펀드 판매평가 결과 상위 10개사 중에서 은행은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산업은행 등 3곳에 불과했다.
고객 수가 많은 6대 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이 12위로 가장 높았고 하나은행(14위), 신한은행(16위), 국민은행(19위), 농협은행(20위), 기업은행(22위) 등 대형 은행들은 중·하위권에 그쳤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