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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화로 보험 뚝딱 가입?...설계사 대리서명 횡행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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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화로 보험 뚝딱 가입?...설계사 대리서명 횡행 '주의'
보험사 “설계사의 판매 과정 모두 체크 불가능"
  • 문지혜 기자 jhmoon@csnews.co.kr
  • 승인 2023.03.08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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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 북구에 사는 서 모(남)씨는 2021년 A보험사 치아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 치아보험에 관심이 있어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야기하는 터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두루뭉술하게 가입의사를 밝힌 만큼 추후 해피콜이나 가입안내서 등을 우편으로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카드내역을 확인하던 중 2년 가까이 보험료가 빠져나가고 있던 것을 알게 됐다. 서 씨는 “전화상으로 너무 빠르게 이야기해 무슨 소린지 모르고 넘겼고 나중에 안내서가 오면 꼼꼼하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해피콜이든 전자서명이든 아무 것도 없이 전화 한번으로 보험 가입이 끝나는 것이냐”고 기막혀했다.

# 대구시 달서구에 사는 권 모(여)씨는 지난 2017년 회사 법정의무교육 후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브리핑 영업을 통해 B보험사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목돈 마련에 좋은 저축성 상품이라는 말에 가입을 결심했지만 6년 넘게 보험료를 낸 최근에야 보장성 상품인 종신보험인 것을 알게 됐다. 설계사가 상품설명서와 계약서 등을 주지 않아 정확한 상품명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서에 가입자 서명도 권 씨가 한 것이 아니라 설계사가 임의로 날조한 것이었다고. 권 씨는 “10년 동안 보험료를 내면 복리 이자까지 붙는데다가 언제든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는 구두 설명만 들었는데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황당해했다.

# 대전시 서구에 사는 박 모(남)씨는 지난 2018년 C보험사의 치아보험에 가입했다. 보험료가 10만 원이 넘어가는 비싼 상품이었으나 설계사가 비쌀수록 혜택이 많다고 설명한 것을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최근 핀테크 통합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5만 원은 치아보험으로, 나머지 5만 원은 암보험으로 책정돼 있었다고. 보험사에 항의하니 담당 설계사가 그만둬서 상황은 모르겠으나 암보험 가입 계약서에도 ‘자필서명’이 돼 있다고 안내했다. 박 씨는 “보험사에 계약서 사본을 요구하니 서명이 돼 있긴 했지만 내 싸인과 완전히 달랐다”며 “보험사로 보내면 대조해보겠다고 하더니 자필서명이 아닌지 맞는지 정확하지 않다는 뉘앙스로 보험 해지를 거절당했다”고 답답해했다.

보험 설계사가 소비자의 자필서명을 대신해 본인이 사인하는 ‘대리서명’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보험 가입자나 피보험자의 자필서명을 받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97조 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관한 금지행위를 통해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자필서명이 필요한 경우 이를 받지 않고 서명을 대신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서명하는 행위’를 막고 있다.

설계사들이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 중요한 설명을 누락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가 서류를 직접 확인했는지, 설명을 제대로 들었는지 등을 점검하는 '자필서명'을 필수적으로 받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설계사의 설명 의무가 강화되면서 자필서명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대리서명은 여전히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의 제재현황을 살펴보면 올해에만 아너스금융서비스, 엘앤알자산관리, 대한보험금융, 어센틱금융그룹 보험대리점 설계사들이 자필서명을 받지 않은 것이 적발됐다.

보험사들은 설계사들의 ‘대리서명’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모든 보험사들은 상품 가입 후 해피콜을 통해 ‘어떤 상품인지 정확히 설명했는지, 안내서나 계약서에 직접 서명했는지’ 등의 질문을 하고 있다.

소비자가 ‘네’라고 대답했더라도 혹시 모를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자필서명이 맞는지 모든 계약서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삼성화재의 경우 90% 이상을 전자서명으로 받고 있으며, 나머지 10%는 대조작업 등을 통해 하나하나 확인한다.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농협손해보험 등 손보사 뿐 아니라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흥국생명, NH농협생명, 신한라이프 등도 최소 3개월 이내에 자필서명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설계사가 악의적으로 서명을 날조하는 경우 막기 어려운 데다가 소비자들도 번거로운 절차를 귀찮아하는 터라 대리서명이 끊이질 않는다는 설명이다.

보험 계약 시 최소 10번 이상을 서명해야 하고 ‘핵심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거나 상품명 등을 직접 써야 하는 부분도 생기다보니 계약에 급급한 설계사들이 시간을 들여 서명을 받는게 어렵다는 것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당연히 대리서명은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고 해서는 안 되지만 서명해야 하는 부분이 워낙 많다보니 한군데 정도 누락되는데 다시 찾아가 서명을 요청하는 것이 현장에서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도 “대리서명을 막기 위해 매월 교육도 하지만 GA 설계사들의 판매 과정까지 모두 체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소비자들도 당시 귀찮아서 서명을 미룬 뒤 나중에 계약 파기의 근거로 들이미는 경우가 있다”고 난감해했다.

금융당국에서도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리서명이나 우회모집 등을 막기 위해 관련 설계사 수수료 지급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문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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