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부산 사하구갑)이 기업은행 본점 소재지를 '부산광역시'로 해야한다는 중소기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13일에는 본점 소재지를 '대구광역시'로 해야한다는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대구 달서구을)안이 발의됐다.

20대·21대 국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지역구에 기업은행 본점을 유치하기 위한 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정무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22대 국회에서도 상임위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법안이 다수 발의됐음에도 통과되지 못한 것은 기업은행의 지방이전은 은행의 본원 경쟁력을 무시하고 특정 지역의 균형발전을 내세운 정치 논리가 설득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에 원활하게 자금공급을 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국책은행이지만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는 상장사다. 주주이익을 극대화 해야하는 상장사 특성상 꾸준히 성장을 도모하고, 이익을 내야 하는 기본적인 소임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기업은행은 시중은행과 유사한 이자이익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시중은행과 여·수신 경쟁을 해야하고 금융상품 판매를 통해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다.
9월 말 기준 기업은행의 원화예금은 125조 원 내외이지만 중금채를 통해 유입되는 자금을 포함하면 전체 수신고는 300조 원에 육박한다. 원화예수금이 300~350조 원 내외인 5대 시중은행과 비슷한 규모다. 총여신 규모도 300조 원 내외로 5대 시중은행과 큰 차이가 없다.
전체 대출에서 중소기업 대출이 70% 이상 차지해야한다는 특수성은 있지만 영업 형태로만 보면 시중은행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본점 이전은 결과적으로 기업은행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리스크 요인이다. 기업은행이 치열한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거나, 자금조달력이 떨어질 경우 중소기업을 지원할 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중소기업 자금공급을 원활하게 한다는 기업은행 설립 취지만 놓고 봐도 본점 지방 이전이 공감대를 얻기는 힘들다. 중소기업이 대구나, 부산 같은 특정지역에만 몰려 있는 게 아니며, 본점을 지방으로 옮기면 오히려 기업은행의 주요 고객과 더 멀어지는 모순적인 결과가 생긴다.
이는 통계만 살펴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중소기업 804만2726곳 중에서 수도권 지역 소재 중소기업은 420만6779곳으로 절반 이상이다. 종사자 수 기준으로도 수도권 지역 중소기업 종사자수는 1037만 명으로 전체 중소기업 종사자 수의 54.7%를 차지한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기업은행의 전체 점포 627곳 중에서 수도권 지역 점포가 427곳으로 68.1%나 된다. 중소기업이 밀집한 곳에 영업점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본점 이전 후보 지역으로 제시되는 부산과 대구의 중소기업체 수는 각각 49만 여 곳과 34만여 곳에 불과하다. 두 지역을 다 합쳐도 국내 전체 중소기업의 10% 정도다. 수도권에 위치한 중소기업 420만 개를 버리고 대구나 부산으로 내려가는 게 과연 중소기업을 위한 결정일지 되묻고 싶다.
심지어 대구은행이 지방은행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iM뱅크로 사명을 바꾸며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상황에서 대형 은행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은행을 지방으로 끌어 내리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역경제를 위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정치인의 욕심이 경제논리는 무시한 채 만만한 국책은행 흔들기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입맛이 못내 씁쓸하다. 가뜩이나 실물경제가 어렵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기업은행의 경쟁력이 훼손되든 말든, 다른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차별을 받든 말든 내 지역구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정치적 셈법은 부디 중단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