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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新경영'15돌...또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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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新경영'15돌...또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8.06.04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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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6월7일은 삼성그룹의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날이었다.

   취임 6년째를 맞은 이건희 회장은 이날 200여명의 그룹 핵심경영진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로 모이게 했다. 영문을 모른채 서울 등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경영진들 앞에서 이 회장은 그룹 경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하면서 `나부터의 변화'를 역설했다.

   오늘의 삼성이 있게 한 신호탄이 된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렇게 시작됐다.

   `질(質) 중시 신(新) 경영으로 세계 일류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구호로 요약될 수 있는 신경영 전략이 실행 모드에 들어간 지 15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중저가 제품 생산업체에서 세계적 표준을 제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이 오랫동안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던 일본의 소니에서 이제는 `삼성으로부터 배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삼성은 올해 4월22일 그룹 총수인 이 회장의 퇴진을 핵심으로 하는 전면적인 쇄신안이 발표된 이후 새로운 도전의 영역으로 발을 내디디고 있다. 변화의 엔진 역할을 해왔던 이 회장의 강력한 오너십과 전략적 조율 기능을 담당했던 그룹 전략기획실이 없는 실험적 환경에서 한층 치열해진 글로벌 경쟁을 뚫고 선도기업의 지위를 유지해나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 신경영 15년의 성과 = 1987년 선대 회장의 별세로 삼성호의 키를 잡은 이 회장은 제2창업을 선언하면서 반도체와 LCD, 휴대전화를 앞세운 글로벌 브랜드로 삼성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질(質) 경영'이란 화두를 붙잡고 고민하던 이 회장은 변화와 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룹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후쿠다 시게오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의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가 개혁을 촉발한 뇌관이 됐다.

   같은 해 7월 초 전 임직원의 근무시간을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으로 조정하는 `7.4제'가 전격 실시됐고, 1995년 3월에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2천여명의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휴대전화 등 500억원 어치의 불량품을 소각하는 충격요법이 동원됐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이 회장은 65개에 달하던 계열사를 45개사로 축소하고, 총 236개 사업을 정리하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삼성이 위기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이끌었다.

   비록 삼성전자에서만 3만여명, 총 5만2천여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주저없는 구조조정을 통해 삼성이 발빠르게 외환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10주년인 2003년 6월 글로벌 인재 발굴과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제2의 신경영'을 선언했고, 3년 뒤인 2006년 9월 미국과 영국, 두바이 순방을 계기로 `창조경영'을 설파하는 등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경제 환경에 맞게 자신의 신경영론을 업그레이드시켜 왔다.

   신경영 15년이 일궈낸 성과는 수치로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삼성은 D램 등 반도체, TFT-LCD, 휴대전화, 모니터, PDP 등 20여개 제품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브랜드 가치는 2007년 169억 달러로 세계 21위를 기록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최고 명문구단인 첼시의 유니폼에 삼성의 로고가 새겨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신경영 첫 해인 1993년 41조원이었던 삼성의 매출총액은 이 회장 취임 20주년인 2007년 12월1일 현재 152조원으로 3.7배 증가했고, 5천억원에 그쳤던 세전이익은 14조2천억원으로 28.4배로 증가했다. 또 시가총액은 신경영 시작 직전인 1992년 3조6천억원에서 140조원으로 38.9배나 늘었다.

   반면 같은 시기 그룹의 순차입금과 부채비율은 각각 5분의 1,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 재정 건전성이 높아졌다.

   2007년 12월 이 회장의 취임 20주년을 전후해 산출한 수치에 따르면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매출은 국내 총생산(GDP)의 18%, 시가총액은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의 20%,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했다.

   `포천'과 `비즈니스위크', `파이낸셜 타임스' 등 해외 유력언론들은 이처럼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급상승한 삼성의 발전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이 회장의 강력한 오너십을 그 원동력으로 꼽았다.

   ◇ 삼성특검과 위기 = `신경영'을 발판으로 쾌속성장을 구가하던 삼성은 지난해 10월 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부정.비리 의혹 폭로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의 소환에 이어 이 회장 본인까지 특검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전례없는 진통을 겪었다. 신경영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유구조와 경영권 승계의 문제점, 비리의혹으로 이어진 낡은 관행 등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 회장은 마침내 지난 4월22일 자신이 퇴진하고 아들인 이재용 전무 CCO(최고 고객 책임자)가 보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골자로 한 삼성그룹 쇄신안을 전격 발표했다. 또 그룹 전략기획실 해체와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 핵심 경영진도 물러나도록 했다.

   쇄신안에 따라 이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이재용 전무는 별다른 직책없이 신흥시장으로 주목받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BRICs) 지역을 돌며 `낮은 자세'로 현장을 익히기 위해 짐을 꾸려 떠날 준비중이다. 이 전무는 중국 상하이(上海)를 첫 근무지로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향후 그의 근무형태나 지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윤종용 전 부회장이 물러나고 이윤우 부회장이 바통을 넘겨받았고, 삼성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맡았다.

   회장 보좌, 계열사 업무 조정, 그룹 자금 총괄관리 등 핵심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전략기획실은 이달 말까지 해체작업이 완료될 예정이며, 이미 핵심인력들을 재배치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신속하고도 파격적인 쇄신조치를 거치면서 삼성은 쇄신안이 발표된 지 40여일 만에 특검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면서 경영 연착륙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6일 세계 최대급인 256GB SSD 개발을 발표함으로써 건재함을 안팎에 과시했고, 그룹의 화합과 새출발을 위해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15주년을 맞아 이달과 다음달중으로 경징계를 받은 임직원들에 대해 사면을 실시하고 회사에 기여한 공로가 큰 임직원들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하기로 하는 등 내부 분위기를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경영의 미래 =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엔진이었던 `신경영'은 새 도전을 맞고 있다.

   신경영을 이끌어온 요체는 이건희 회장의 오너십을 정점으로 전략기획실과 관계사 경영진들이 양대축을 이루는 이른바 `삼각편대 경영'이었지만, 이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의 해체로 삼각형의 두 꼭지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달라진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나갈 것인 지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도 아직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신경영'의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5일 사내방송(SBC)의 신경영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15년전 육성을 내보내는 것으로 심기일전을 다짐하기로 했다.

   당분간 삼성호(號)의 마스트에 세워질 깃발 역시 신경영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창조경영'이 될 전망이다.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취임사를 통해 "스피드와 효율 중심의 경영혁신을 기반으로 창조경영을 확대, 발전시켜 삼성전자를 21세기의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어나가자"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이 부회장이 창조경영의 핵심내용으로 인재 확보, 조직문화 혁신, 기술 준비경영, 신수종 사업의 발굴 확대, 시장.고객가치 중시, 정도.준법 경영 등을 제시하면서 미래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한 데서도 삼성의 향후 행보를 점쳐볼 수 있다.

   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의 성장을 이끌었고 외부에서도 강점이라고 평가했던 강력한 리더십과 조정 기능이 없어진 상태에서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창출해나가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다"며 "아직 청사진이 확정되지 않았고 새로운 도전이 되겠지만 신경영의 기조는 발전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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