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송혜교와 현빈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다. 귀여운 단발머리로 출연한 송혜교가 '귀차니즘'에 빠져 자기 옷으로 바닥 청소를 하던 모습이다. 내심 스타를 우러러보고 있었는데 '송혜교도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차니즘'은 만사가 귀찮아 게으름을 피우는 현상이 고착화된 상태를 일컫는 인터넷 용어다. 네티즌들이 '귀찮~'이라는 어간에 ‘행위, 상태, 특징’ 등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니즘(~ism)’을 붙여 만든 신조어다.
요즘 신세대들은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귀차니즘이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번잡한 세상살이에 이것저것 신경 쓰기 싫을 때, 일에 지친 몸으로 만사 제쳐 놓고 쉬고 싶을 때, 자신의 실수를 곱씹으며 후회하기 싫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아, 몰라. 귀차니즘이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귀찮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는 동생이 빵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나왔다. 그는 이리저리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신고한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주말이 지나면서 신고하는게 귀찮아졌다며 슬그머니 발을 뺐다.
귀차니즘은 다른 데서도 발견된다. 뚜껑도 따지 않은 음료수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는 A씨. 업체에 항의를 하겠다더니 며칠 후 신고하기 귀찮다고 했다. B씨는 아기가 먹는 분유에서 이물질이 검출됐다. 너무 놀라고 화가 난 나머지 펄쩍 뛰던 B씨는 주말이 지나면서 회사측과 싸울 자신이 없어서 이의제기를 포기했다.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식품사고가 발생한 경우 소비자가 신고하는 경우는 절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식품불만에 대한 이의제기와 신고가 갈수록 늘고 있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포기하는 숫자도 역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먹던 빵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하지 않으면 제조업체는 식품안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자에서 생쥐가 나오고, 라면에서 지렁이가 나오면 사람들은 치를 떨 것이다. 세상에 먹는 음식을 저렇게 엉터리로 만들어도 되냐고.
소비자가 귀차니즘에 빠지면, 식당주인도 식품회사도 귀차니즘에 물들기 마련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서, 믿을 만한 음식을 먹고 싶다면 나부터 귀차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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