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군포에 사는 고 모(여)씨는 얼마 전 혼자 사는 시어머니 최 모(여)씨로부터 '누가 안테나를 달고 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달 말 최 씨의 집으로 통신업자가 방문하더니 TV 안테나를 달아주겠다며 접근했다는 것. 고령이었던 최 씨는 아파트 관리소에서 온 줄 알고 업자가 시킨대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고 자필 서명까지 했다고. 알고 보니 통신사에서 설치한 위성 안테나였다. 이미 케이블 TV를 시청하고 있는 최 씨는 위성방송을 설치할 이유가 없었다고. 고 씨가 대신 계약 무효를 요구했지만 업체에서는 해지 시 안테나 설치비를 물어내야한다는 입장이다.
#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 모(여)씨는 3월 초 우수고객를 대상으로 저가 요금제 기기변경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는 전화를 받고 신청했다. 며칠 후 휴대전화로 'T 멤버십에서 탈퇴했습니다'라는 문자가 와 확인해보니 알뜰폰 통신사로 번호이동이 된 상태였다. 개통 취소를 요구했지만 '개통 후 14일 이내 기기고장 외에는 어렵다'는 안내가 전부였다.
유·무선 통신 불완전판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지만 좀처럼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노인층이나 미성년자 등 상대적으로 통신 정보에 어두운 계층 위주로 피해가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판매 경로, 주체가 다양해지면서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접수된 통신 불완전 판매 피해 건수만 총 1천52건에 달해 통신 관련 소비자 피해 유형 중 가장 많았다.
통신 불완전 판매의 상당수는 텔레마케팅(TM)이나 방문 판매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TM을 통한 피해가 많았는데 이는 '비대면 접촉' 방식이라 계약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이 높은 탓이다. 게다가 추후 분쟁 발생 시 증거물이 될 수 있는 계약서조차 지급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피해 입증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방문판매는 주로 통신사 직원들이 가가호호 판촉을 다니는 방식으로, 주로 노인들에게 접근해 엉뚱한 통신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주된 피해 유형이다.
예를 들어 유선방송을 멀쩡하게 시청하고 있는데 불쑥 찾아와서 무료로 IPTV나 위성방송으로 교체를 해준다고 접근한 뒤 슬그머니 계약을 유도하는 식이다. 무선 상품 위주의 TM과 달리 방판은 주로 인터넷 결합상품과 방송 콘텐츠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 통신사들 "TM 안하지만 계약 자체 무효도 못 해"...이유는?
문제는 TM이나 방판에 대한 통신사들의 이중적 태도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TM을 되도록 운영하지 않지만 TM 자체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통신사 차원에서 무효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고객에 대한 통신사의 TM은 합법이다. 다만 TM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거나 불완전 계약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불법이고 계약 무효 처리를 하는 것이 맞다"고 입장을 보였다.
방통위 관계자도 "TM도 판매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TM을 불법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면서 "다만 공정거래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법률적 판단을 통해 가려야한다"고 유보적인 입장이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협회가 공동 운영하는 '불법TM 신고센터'에서 정의한 불법 TM의 기준은 이렇다.
'영업점에서 불법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고객의 동의 없이 TM에 활용하여 서비스 가입을 유도하는 행위. 단, 영업점에서 수집한 모든 정보가 불법은 아니며 관련 법령에서 정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하고 이용하는 것은 법규상 허용될 수 있다.'
본사 차원에서의 TM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발을 빼면서 정작 그렇게 진행된 계약은 유지토록 하는 통신사들의 이중적 태도에 소비자들의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 '14일 이내 취소 가능' 규정 있으나 마나...계약서, 녹취록 등 구비해야
불완전 판매로 인한 계약의 구제가 규정상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구입 후 14일 이내에는 위약금 없이 해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4일 이내 해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피해 소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단 해당 계약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4일을 넘기기 일쑤고 판매업자가 계약 해지를 거부하거나 지연할 경우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계약 과정에서 불완전한 내용으로 안내를 했는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계약 과정에서 반드시 녹취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문판매의 경우 계약서를 반드시 보관하고 계약서에 표시되지 않는 내용은 계약서에 명시 해야한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는 TM을 통해 휴대전화 단말기를 무료로 바꿔준다고 허위 광고를 한 SK텔링크에 대해 조만간 제재를 내릴 예정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김건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