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대표는 외형 확대를 통해 글로벌 제약사 도약을 위한 발판을 다졌다. 다만 10대 제약사 평균의 절반 수준인 영업이익률 개선이 시급하다. 그룹 후계자로서 지배지분 확대도 진행해야 할 일이다.
23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GC녹십자의 지난해 매출은 1조9913억 원으로 2016년 3월 허 대표 혼자서 회사를 이끌기 시작하기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90% 증가했다. 10년동안 연간 매출이 감소한 것은 2023년 한 번 밖에 없다. 전통제약사 중 유한양행에 이어 두 번째로 2조 매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제약사의 매출 확대는 임상시험 비용과 같은 장기 투자 체력을 확보해 안정적인 신약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수익성 부진은 알리글로 등 신약 파이프라인 육성에 투자하면서 생긴 비용이 원인이 됐다. 허 대표 재임기간 GC녹십자는 매년 1000억 원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2022년엔 2136억 원에 달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도 10년간 10% 이상을 유지했다.
혈액제제, 백신 외 의약품 부문(일반제제류)에서 고지혈증 치료제 '다비듀오', 당뇨 치료제 '네오다파',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에소카' 등 자체 품목을 갖춘 것도 외형 성장이라는 성과를 냈다. 일반제제류 매출은 허 대표 재임 기간 1947억 원에서 4798억 원으로 2.5배 늘었다.

알리글로는 선천성 면역결핍증 환자에게 사용된다. 특정 항체를 가진 사람의 혈장에서 면역 작용 단백질인 면역글로불린을 분리·정제해 만든 의약품이다.
단독대표를 맡은 첫 해인 2016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허 대표는 “면역글로불린제제인 IVIG-SN의 美 FDA 허가신청 등 꾸준히 추진해오던 일들이 결실을 맺어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최종 관문을 눈앞에 둔 북미 시장 진입을 위해 녹십자 임직원 모두 총력을 집결할 것”이라며 알리글로의 미국 진출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알리글로의 미국 허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6년 10월 제조공정 관련 보완자료 요청을 받았다. 2017년 9월 또다시 제조공정 자료 보완 지적을 받았다.
이후 기존 면역글로불린 함유 농도 5%에서 미국 시장에서 수요가 높은 10% 농도로 임상을 진행해 2021년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현장실사가 진행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주력 수출 품목 중 하나인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주요 시장인 러시아 지역 공급이 불가능해지면서 2023년 매출이 1조6266억 원으로 전년 대비 4.9% 줄었고, 영업이익이 344억 원으로 57.7% 급감하는 역성장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허 대표는 알리글로 미국 진출이라는 일념으로 FDA 실사 준비에 집중했다. 2023년 신년사를 통해 허 대표는 "불가능해 보일수록 더 악착같이 달려들고 어려울수록 포기를 모르는 도전의 DNA를 다시 흔들어 깨울 때"라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2023년 4월 FDA 실사가 진행돼 당해 12월 알리글로가 최종 품목허가를 받았다. 처음 신청했던 2015년 이후 8년 만에 국내 기업이 개발해 미국 시장에 최초 진입한 역사를 썼다.
이 같은 성과에도 허 대표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2024년 신년사를 통해 “도전 8년만의 성과에 대한 성공의 기쁨보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배우고 얻은 것에 대한 감사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증명의 시간에는 실수가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모든 과정을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준비할 것"이라며 상업화까지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알리글로는 2024년 하반기 출시됐다. 출시 첫 해인 2024년에는 약 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1억600만 달러(한화 약 1511억 원)로 연초 제시한 가이던스 1억 달러를 초과 달성하면서 GC녹십자의 매출과 영업이익 성장을 견인했다.
알리글로 성장으로 GC녹십자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도 확대됐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수출액은 4466억 원으로 2024년 연간 수출 3806억 원보다 17.3% 많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4%로 2년 연속 20%를 상회하고 있다.

허 대표는 2028년까지 알리글로 매출 목표를 약 3억 달러로 설정했다. 미국 시장은 혈액제제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다는 특징이 있다.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면역글로불린 제제(정맥주사형) 시장은 전 세계에서 44%가량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규모는 지난해 약 11조 원에서 2031년 15조8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확대에 맞춰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허 대표는 지난해 초 1380억 원을 들여 현지 혈장 센터 8곳을 보유한 ABO홀딩스(현 ABO플라즈마) 인수를 결정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연간 채장량은 2024년 대비 27% 증가했고, CPL(리터 당 비용)은 7% 줄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외에도 현지 면역글로불린 유통채널의 약 50%에 해당하는 전문약국(SP)과 협업하고 보험사,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등 처방집 등재에 집중해 처방 이후 급여 적용 대상 환자(커버리지)를 늘리는 전략을 추진하는 등 미국 상업화에 집중했다.
올해도 허 대표는 알리글로 성과 확대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허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2025년 알리글로 매출 1500억 달성이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알리글로는 기존 만 17세 이상 성인에서 소아 대상으로 처방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임상 3상이 진행되고 있다. 또 GC녹십자는 피하주사제형(SC) 일차성 면역결핍 치료제 'GC5136'을 개발 중이다. 미국 시장에서 GC녹십자 브랜드 영향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등 알리글로의 뒤를 이을 파이프라인을 육성하고 있다.
GC녹십자 관계자는 "그간 개발 성공 경험을 기반으로 파이프라인을 구성하고 있다. 산필리포증후군A형 치료제 및 파브리병 치료제 글로벌 임상을 진행 중이고, 대상포진 및 EBV(엡스타인-바 바이러스), mRNA(메신저리보핵산)/LNP(지질나노입자) 플랫폼 기술을 활용한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며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면역염증 질환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노벨티노벨리티, 넥스아이, 카나프테라퓨틱스 등 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리글로를 통해 글로벌에 진출하며 외형을 키운 허 대표는 현재 GC녹십자그룹에서 지배력은 아직까지 높지 않다.
허 대표는 한일시멘트 창업주 고(故) 허채경 회장의 손자이자 고 허영섭 GC녹십자 회장의 차남이다. 허 회장 장남인 허용준 사장은 그룹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 대표를 맡고 있다.
지주사 지분율도 허 대표는 2.63%로 형인 허용준 대표(2.9%)보다 낮다. 창업주 사남 허남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의 딸 허정미 씨(3.2%)보다도 낮아 두 형제 모두 지배력은 굳건하지 않다. 허 회장이 보유한 12.1% 지분 향방에 따라 후계자가 결정되는 구도다.
GC녹십자홀딩스는 허 씨 일가 등 총 32인의 특수관계인들이 총 48.2%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현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