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1.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는 권 모씨는 사용하던 대형 가전업체 A사의 양문형냉장고 냉동실 냉기가 나오지 않아 지난 13일 AS를 신청했다. 방문한 기사는 컴프레서 문제라며 “제품 구매 영수증이 있어야 무상 AS를 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10년 전 구매한 제품인데 영수증을 이때껏 보관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보증기간 10년 만료가 안 됐는데 구매처에도 구매내역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억울해했다. A가전사 측은 “구매 증빙이 어려워 시리얼번호 속 제조연월일에 3개월을 더해 무상보증기간을 산정해 보니 2025년 12월로 무상보증기간이 끝나 유상으로 처리한 건”이라고 설명했다.
# 사례2. 2019년 유명 가전업체 B사 냉장고를 구매했던 최 모씨는 최근 냉기가 잘 안 나오는 고장으로 AS를 신청했다. 수리기사는 “부품 수급이 안 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냥 돌아갔다. 수리기사로부터 "7년 이내 제품은 감가삼각 환불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최 씨는 보상받을 방법을 찾아봤으나 6년 전 구매영수증이 필요하단 점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영수증을 수년간 보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카드사에도 문의했으나 세부내역은 없다고 한다"며 "부품 없는 피해를 왜 온전히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런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 사례3. 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 모(남)씨는 식품 보관용기의 뚜껑 부분 누수로 지난 13일 제조사 C업체에 문의를 넣었고 “구매처 정보와 구매영수증이 필요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 씨는 “제품을 몇 년 전 구매했는지도 가물가물한데 누가 영수증을 보관하는가”라며 분노했다. 생활용품기업 C사 관계자는 “무상 AS 기간 판단의 기준이 구매일이기 때문에 증빙을 요청한 것”이라며 “해당 제품 품질보증기간은 구매일로부터 1년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 사례4. 올해 초 당근마켓을 통해 D사의 분유포트를 구매해 사용 중이던 광주 광산구 한 모(여)씨. 사용 한 달 만에 기기 겉면의 ‘보온’ ‘출수’ 표기 부분이 지워져 AS를 신청하려 했으나 제조사는 “구매 이력이 있어야 AS 진행이 가능하다”고 응대했다. 거래 당시 한 씨가 구매이력을 요청했는데 판매자가 잠수를 타버린 일이 결국 화근이 된 것. 한 씨는 “회사는 구매 이력만 요구하며 유료 AS 신청도 거절했다. 지금은 제품에 임의로 스티커를 붙여서 사용 중”이라며 허탈해했다.

최근 가전·생활용품업계에서 '영수증' 등 구매 증빙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AS 신청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 소비자가 제품 영수증을 장기간 보관하지 않는 데다 선물이나 중고거래를 통해 제품을 갖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소비자는 “유상 수리라도 받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구매 이력 확인만을 일관되게 요구하며 접수를 거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판매일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제조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날부터 품질보증기간을 기산하도록 하고 있어 업체의 AS 거부는 이같은 규정에도 위배되는 셈이다.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피해 소비자들은 지인에게 선물 받은 제품, 중고거래로 구매한 물품, 수년 전 구매해 영수증을 갖고 있지 않은 제품 하자로 AS를 신청했다가 이러한 벽에 부딪혔다고 입을 모았다. 가전업체부터 뷰티 디바이스, 생활용품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이같은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업체들은 품질보증기간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구입일’ 확인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구매이력 조회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AS 등 각종 사후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과도한 갑질이라고 소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일부 제보자들은 "기업은 시리얼번호 등으로 구매 시점을 확인할 방법이 많을 텐데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며 수리 접수조차 안 해주는 것은 사실상 제품을 새로 구매하라는 강요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온라인몰, 중고거래 플랫폼 등 다양한 유통 경로가 존재하는데 업체들이 일률적인 구매이력 입증 요구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자체 전산 시스템을 활용해 영수증에 구애받지 않고 AS를 제공한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영수증이나 구매 이력이 없더라도 제품에 부착된 시리얼번호로 정품 여부와 제조일자를 확인 후 AS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LG전자 측은 “보증기간은 제조일보다 구매일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 고객 입장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에 구매 이력을 구태여 요청하는 것”이라며 “공식몰인 LG전자 베스트샵에서 산 고객정보는 자동 연동되지만 그 외 유통채널 이용객들은 따로 제품 등록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고도 기업의 전산·제품 식별 시스템만으로 얼마든지 소비자의 AS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이 영수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AS 여부가 좌우되는 건 정부가 정한 법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영수증을 분실하거나 판매일자를 확인하기 곤란한 경우 제품의 제조일 또는 수입통관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날을 품질보증기간의 기산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구매 영수증이나 구매자 정보가 없더라도 제품에 표기된 제조일자에 3개월을 더한 날을 기준으로 보증기간을 산정해 AS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상보증기간이 지났더라도 정품이라면 유상 형태로라도 수리 서비스를 제공해아 한다.
취재 결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체들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근거해 AS서비스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품질보증기간이 구입일로부터 산정되므로 영수증 등 제품 보증서나 구매이력을 먼저 확인하되 확인이 안 되더라도 제조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보증기간을 산정해 수리 절차를 밟는다는 식이다.
회사들은 AS 정책상 공정위 고시에 따른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소비자가 체감하기로는 실질적인 구제 문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구매이력을 증빙하기 어려운 소비자도 회사의 정책에 따라 AS 대상에 넣는 제조사가 있고 제외하는 제조사가 있다. 또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도 강제성이 없어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업이 이를 고쳐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며 “정품임이 입증됐다면 추가적으로 구매이력을 제출하라 요구해 소비자의 수리받을 권리를 제약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부연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유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