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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요원 사칭 주부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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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요원 사칭 주부의 이중생활
  • 연합뉴스 master@yonhapnews.co.kr
  • 승인 2007.02.0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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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비밀요원을 사칭해 친지들로부터 수억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된 주부 이모(31)씨는 치밀한 `이중생활'로 주변 사람들을 속여 온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이씨는 실업계 고교 졸업 후 소규모 기업 경리로 2년간 일하던 중 속기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원을 다녔다.

이 때 각종 채용 공고를 접하면서 `국가안전기획부'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안기부에 속기사로 취직했다'고 친구들에게 거짓으로 과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들은 "참 좋은 데 다니네"라며 부러워했고 부모와 일가 친척들도 이씨가 안기부 직원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국정원 직원' 행세를 하고 다닌 이씨의 거짓말 행각이 점점 더 대담해졌다.

사칭 직함도 `국정원 속기사'에서 `국정원 자금담당 요원'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청와대 파견 비자금 담당 국정원 비밀요원'으로 갈수록 거창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근무 분야를 옮겼다고 말했다.

이씨는 비싼 명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씀씀이가 크고 친구들에게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별다른 직업이 없는 주부다 보니 쓸 용돈이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처음에는 아버지한테서, 나중에는 외삼촌한테서 돈을 빌리고 나중에는 일가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사기로 돈을 뜯어냈다.

이씨는 "국정원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어음을 사채시장에서 할인받아 현금화해 정치 비자금을 마련한다. 할인에 참가하면 연 25%의 이자를 챙길 수 있다"라는 감언이설로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7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친지들과 얘기를 나눌 때는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국가정보원법과 보안규정 등을 보여 주며 비밀 엄수를 다짐받았다.

돈을 빌린 직후 몇 달간은 다른 곳에서 또 돈을 빌려 고액의 이자를 주면서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씨는 2001년 카센터를 운영하는 중학교 동창생과 결혼할 때도 신분을 감쪽같이 속였다.

양가 부모, 친척, 친구 등은 모두 이씨가 국정원에 근무한다고 믿었으며 결혼식 당시 주례도 "신부 이양은 정부기관 공무원으로 근무한다"고 하객들에게 소개했다.

두 자녀를 낳은 이씨는 아기 백일잔치와 돌잔치가 다가오면 국정원 명의의 리본이 붙은 꽃바구니를 배달시켰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본인이 입원했을 때는 `쾌유를 빕니다. 국정원 동료직원 일동'이라는 바구니를 자기가 있는 병실로 보내기도 했다.

아내가 지각할까봐 걱정하며 늦잠을 깨우는 남편에게는 "특수업무를 하는 비밀요원이어서 늦게 출근해도 되고 일이 있으면 호출이 올 것"이라고 둘러댔다.

매일 느지막하게 집을 나선 뒤 마땅히 할 일이 없자 전문대에 등록해 다니기도 했으나 1년도 되지 않아 그만 뒀다.

이씨는 사기행각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처음 두 차례 조사에서는 본인이 국정원 비밀요원이라고 우겼다가 세번째 조사에서 경찰이 각종 조회결과를 들이대자 거짓말을 시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이씨 친지 10여명은 이씨가 `공식 확인이 허용되지 않는 특급 비밀 요원'이 틀림없다고 지금까지도 믿고 있다"며 "수사 경력 30년에 이런 사건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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