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당시로선 파격적인 춤을 추며 '키다리 미스터 김'을 불렀던 원로 가수 이금희(68) 씨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유증인 뇌출혈로 2년 전 쓰러져 투병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의 무남독녀인 민윤정 씨는 "2004년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셨는데 혈압 변화로 인한 뇌출혈로 2005년 어버이날 쓰러지셨다"며 "이후 욕창, 패혈증 등 합병증까지 겹쳐 현재 서울 은평구 연세노블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산소호흡기로 연명할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고비가 여러 차례 있었다"며 "노래를 하셨던 분이어선지 폐에 물이 차 기침이 너무 심해 말씀을 하지 못할 정도다. 또 당시 한쪽 다리만 수술해 다른 다리에 염증이 생겨 고통받고 있다"고 증세를 말했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하는 민씨와 서울 한남동에서 살았다. 민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77년 남편과 이혼한 이씨는 외동딸을 위해 헌신하며 생활했다.
"가수가 되려는 꿈을 어머니가 한사코 말렸다"는 민씨는 "어머니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재미동포 위문공연, 베트남 라이따이한 위문 공연 등을 다녔고, 나와 함께 교회 간증, 찬양 활동 등을 하셨다. 어머니는 나의 전부인데 세상을 잃은 기분"이라고 가슴 아파했다.
민씨는 어머니의 가수 인생을 꽤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나와 얘기하면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로 옛 기억들을 생생하게 꺼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씨는 독립운동을 한 부모 아래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이후 부산에 정착했다. 경남여중 때부터 바리톤 오현명 씨에게 개인 레슨을 받으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경남여고 시절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한 탓에 가세가 기울어 레슨비를 못내 결국 명문대학 진학 꿈을 포기했다.
이씨는 어느 날 부산의 한 클럽에서 열린 대중음악 가수들의 공연을 본 후 충격받아 대중가수로 방향 전환을 결심했다. 오빠의 친구였던 가수 송민도 씨의 지인을 통해 라디오 오디션을 받았고 춤을 추며 로큰롤을 불러 가수로 발탁됐다. 이후 그는 '키다리 미스터 김'을 비롯해 '용꿈' '그것 참 별꼴이야' 등 줄줄이 히트곡을 선보였다.
이씨가 낸 마지막 대중음악 음반은 98년 오아시스레코드가 발매한 '웃기지 말아요'. 여기에는 '키다리 미스터 김' '작은 새' 등과 함께 팝송을 번안해 불러 히트한 폴 앵카의 '다이애나' 등이 수록됐다. 이때 그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와 정동극장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펼치기도 했다. 이어 2004년 12월에는 딸과 함께 CCM 음반을 듀엣으로 냈다.
"어머니가 활동하실 때 춤을 추고 노래하는 가수는 상상 못했다고 해요.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댄스 가수라고 하더군요. 이미자 선생님처럼 상당한 기록의 레코드를 취입 못한 건 주로 미8군, 극장쇼 등 라이브 무대에서 격렬한 로큰롤, 댄스 음악을 하셔서 늘 목이 쉬어 있기 때문이었대요. 녹음을 못할 정도로요."
오늘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별이자, 댄스 가수 원조인 이씨의 병상에는 민씨가 외롭게 지키고 있다.
한편 대한가수협회는 "이금희 선생의 투병 생활을 알고 있다"며 "곧 병문안을 가고 모금 활동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