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용카드 발급 요청이 부쩍 늘고 있다.
은행에 몸 담고 있는 지인들을 통한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거리에서나 놀이동산 입구에서도 카드사들의 신용카드 마케팅 이벤트를 볼 수 있다.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서 발급받은 신용카드 몇 장은 연회비만 물고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재우고 있다.
사실 한국은 신용카드 천국이다.
성인의 경우 평균 4.4장의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결제를 신용카드로 해결한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개인이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현금보다 훨씬 높다. 이제 신용카드로 극장표를 구매하고 공과금을 지불하며, 요식업소의 팁까지 결제하는 크레디트 머니 시대가 된 것이다.
신용카드는 잘만 사용하면 신용사회에 걸 맞는 유용한 경제생활 수단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신용카드로 인해서 자신의 소득을 웃도는 과다소비와 충동구매로 개인이 파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카드 도난이나 분실로 피해를 보거나, 비밀번호의 강취나 신용정보 유출로 의도하지 않은 재산적․정신적 피해를 입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2002년에는 연간 1억장이 넘는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잘못된 신용카드 정책으로 카드부채와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국가적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특히 신용불량자 급증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 청소년이나 무소득자 대상의 신용카드 남발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였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카드사들의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보면 지금도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선진국의 경우 철저히 개인의 신용수준을 바탕으로 신용카드가 발급된다. 세금납부 기록이나 은행거래실적에서의 신용이 불충분하면 아무리 은행이나 카드사 문을 두드려도 헛수고다.
신용카드 없이는 소비생활에 지장이 많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신용을 쌓을 수밖에 없다. 개인신용과 재정적 신용이 일정수준이 되면 금융기관에서 보통수준의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다.
신용이 쌓일수록 현금서비스와 거래한도액이 높은 골드급, 프레미엄급 카드 발급자격을 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상급 신용자가 되는 것이다. 고액의 연회비만 내면 어렵지 않게 프레미엄급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우리와 비교된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엄격한 카드발급 관행에 더해 최근에는 소득이 불충분한 21세 미만자에 대한 카드 발급을 엄격히 제한하는 새로운 신용카드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진정한 신용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개인의 신용에 맞는 신용카드 관리가 필요하다.
은행들과 카드사들은 법에서 정한 자격을 충족한 경우에만 신용카드를 발급하되, 개인의 신용을 엄격히 분석하여 소비자의 실제 신용도를 발급 기준으로 해야 한다. 발급된 신용카드에 대해서도 카드소지자의 신용수준이 일정수준으로 낮아지면 지체 없이 회수하고, 원하는 경우 구좌에 잔고가 있는 경우에만 결제되는 직불카드로 교체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에서도 금융기관들의 신용카드 발급과 사후관리에 문제가 없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여 신용카드로 인한 개인 피해와 사회적 부담이 줄어들도록 해야 한다.
이종인/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 건국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