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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용 ‘카페 뮐러’ & ‘봄의 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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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용 ‘카페 뮐러’ & ‘봄의 제전’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3.19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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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뮐러의 공간은 정제된 무채색으로 가득하다. 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테이블과 의자, 투명한 아크릴판으로 차갑게 빛나는 벽과 짙은 어둠 속에 자리해있는 회전문은 명징한 침묵을 더한다. 하얀 옷의 여자무용수는 끊임없이, 그러나 고요하게 벽과의 충돌을 빚어내며 누군가의 꿈속을 정처 없이 헤맨다. 의자와 테이블과 벽과, 그리고 남자무용수와 부딪치고 또 부딪치며 미로 같은 꿈길을 걷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헨리 퍼셀의 ‘애가 - 오, 울게 내버려 두오’의 처연한 아리아뿐이다. 금방이라도 탈진해버릴 것 같은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의자와 테이블을 헤치고 나아가 지친 발걸음의 남자무용수와의 소통을 시도해보지만, 기계적인 움직임을 강요하는 다른 남자무용수에 의해 자신의 몸짓을 제지당한다.


포옹도 키스도 조작되어진 움직임으로만 행해질 수밖에 없는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돌아가는 회전문을 따라 튕겨져 나오기를 반복하는 여자의 몸짓에는 소리 없는 절규가 메아리친다. 상체를 드러낸 채 잠들어있는 여자는 빨간 머리 여자의 짤막한 스텝에도, 의자와 테이블이 쓰러지며 내는 둔탁한 소리에도 쉽사리 깨어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몸짓을 제지했던 남자무용사의 환기에 기계적으로 일어나 같은 동작을 재생해낼 뿐이다. 그녀의 꿈속에 이미 그녀 자신은 사라진지 오래다. 근원적 고독에 대한 공허한 울림은 음울한 아리아의 선율과 짤막한 스텝의 음률을 따라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저 멀리로 조용히 사위어간다.


검은 외투에 비취색 원피스를 입은 빨간 머리 여자는 분홍색 구두를 벗고 간결한 스텝을 밟아보지만 이내 스텝을 멈춰버리고는 자신의 외투와 빨간 머리를 하얀 옷의 여자무용수에게 건넨다. 끊임없이 꿈속을 배회하던 여자는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외투와 손에 쥐어진 빨간 머리를 보고는 검게 퇴색된 꿈의 깊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흡수되어간다. 반복되는 꿈의 잔상은 끊임없이 허공을 떠돌며 카페 뮐러의 공명한 울림 속을 부유한다.


두껍게 깔려 있는 바닥 위로 걸어 나오는 무채색 빛의 여자무용수들. ‘희생의 제의’라는 플롯으로 희생의 의식을 준비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만화경처럼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여자무용수들의 하늘거리는 아이보리 색 의상은 남자무용수들의 검은 의상과 대비돼 연약함과 수동성이 한층 두드러진다. 남자무용수들의 거친 에너지와 역동적인 몸짓은 여성무용수들과의 파드되로 극의 긴장감을 점차 고조시킨다.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정점에 달했을 무렵 이들은 희생자로 점지될 여자무용수를 향한 집요한 탐색을 시작한다. 토탄 위로 모였다 흩어지고, 뛰고 뒹굴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제단에 오르게 될 한 여자무용수에게 마침내 화사한 붉은 원피스가 입혀진다. 저항하려 해도 벗어나려 해도 소용없다. 무용수들은 하나 된 시선으로 희생자를 향한 암묵적 동의와 중립을 지킨다. 차가운 시선 아래 제물로 선택된 여성무용수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최후로의 절규를 온 몸으로 표현한다. 붉은 원피스 사이로 노출된 한 쪽 가슴은 드레스의  선명한 색과 대비를 이루며 무용수들의 냉혹한 침묵에 힘없이 저항한다. 하지만 그녀의 미약한 외침은 종국의 격정적인 선율에 묻혀 맥없이 스러진다.


그녀의 무대에는 깊은 어둠과 끝없는 고독이 자리한다. 강렬한 움직임과 일그러진 동작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근원적 공포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사라져가는 신기루를 움켜잡으려는 듯한 이들의 절망적인 몸짓은 텅 빈 공간을 미아처럼 하염없이 떠돈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와인 조금만 더. 그리고 담배 한 개비만. 하지만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뉴스테이지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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