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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양덕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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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양덕원이야기’
아버지의 임종, 그리고 지난 추억에 젖어드는 가족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6.15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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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앞마당을 연상시키는 널찍한 평상과 바람에 흩날리는 빨래 그리고 나무 한 그루.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정다운 시골집 앞마당이 연극 ‘양덕원이야기’의 풍경이다. 이 작품은 그 흔한 극적 반전이라든지 으리으리한 무대와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그런 소박함이 극의 흡입력을 높였다. 잔잔하게 이어지는 연극의 몰입도를 높인 것은 사실적인 무대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단단히 한몫을 한다. 연극 ‘양덕원 이야기’의 배우들을 보노라면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마치 담 너머에 있는 한 가정을 엿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극적인 스토리와 반전 없이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연극 ‘양덕원이야기’다.


평상에서 펼쳐지는 가족이야기
아버지의 임종을 3시간 앞두고 서울서 자식들이 고향 집으로 내려온다. 눈물을 훌쩍이고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잠시, 생각보다 아버지의 임종이 길어짐에 자식들은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자식들은 그렇게 석 달 남짓을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지난 추억에 스며든다. 아버지의 임종을 기다리는 시간, 가족이 함께 이야기하는 곳이 바로 평상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 평상에 조명을 밝게 비춰 인물을 극대화했다. 가족은 평상에 앉아 지난 이야기를 들추어 기억을 공유하고, 햇볕에 잘 마른 빨래를 개고, 마당을 쓴다. 이렇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 극의 전반을 꽉 메운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핵심을 이루는 이 연극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 염쟁이 지씨다. 그는 아버지의 전우로서 웬만한 형제보다 더 진한 애를 자부한다. 지씨는 극에 감초 역할로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연극 ‘양덕원이야기’에서 확실한 웃음 포인트를 제공한다. 또한, 생활을 위해 서울로 간 자식을 두고 “성(형)이 오늘내일 하는데 가고 말이야. 성이 두 번 가요? 세 번 가요?”라며, 아버지 곁을 지키지 않은 그들에 대한 야속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는 흡사 한 가족과 다름없이 행동한다. 그가 성(형)과 행수(형수)에게 갖는 심리적인 거리감은 이미 한 가족과 진배없어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달
생각보다 길어지는 아버지의 임종 앞에 자식들이 고향 집에 머무르는 시간 또한 늘어난다. 성장한 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이들은 아버지의 임종을 계기로 서로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렇게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며, 싸우기도 하고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 다시 한 번 가족애를 느낀다. 가족 이야기로 꽉 찬 연극 ‘양덕원이야기’에 강아지 덕구는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덕구는 그날 관객 중 한 명이 맡게 되며, 배우는 극 중간 중간 덕구를 불러 관객을 긴장, 동참시킨다. 연극 ‘양덕원이야기’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자식들이 고향에서 며칠 밤을 머물렀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전화를 받는 자식들의 모습, 어머니가 자식을 배웅하는 모습을 통해 시간을 지났음을 예상케 한다. 또 하나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게 바로 달이다. 달은 암전 전후로 보여 시선을 집중시키며,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로 그 모습을 달리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유성이 떨어지고 끈기 있게 생명의 줄을 부여잡고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낙화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잘도 모이던 자식이었는데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늦어지기만 한다. 이에 어머니는 “거 봐여. 진작 가지. 진작 갔으믄 다 왔을 때 갔으믄…. 먼 늠들이 ‘죽겠다 죽겠다’ 헐 때는 잘도 오더니 가니 무소식이래. 빨리 즘 오지 가는 것도 못 보고”라며, 자식에 대한 서운함과 빨리 가지 않아 속을 썩였던 남편에 대한 한탄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여보 잘 가요. 나쁜 기억 다 잊고 좋은 거만 꼭꼭 챙겨서 잘 가요. 좋은데 가요”라고 읊조리며 남편을 보내준다. 나지막이 남편을 보내는 어머니 뒤로 앙상한 가지만 남았던 나무에 목련 한두 송이가 피어 있고, 나무 밑으로 꽃잎이 떨어져 있다. 떨어진 꽃잎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의 시, 낙화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길었던 아버지의 임종이 끝나고 티격태격했던 자식들의 관계는 더욱 유들유들해진다. 자식들은 각자의 생활터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어머니는 남편이 손수 만든 집에 남아 그동안의 추억을 보듬으며 살아간다. 잔잔하지만 따뜻함이 서려 있는 연극 ‘양덕원이야기’는 아버지의 임종을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되짚어보게 한다.


박수민 기자 뉴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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