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가 심상치 않다.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환율은 가파르게 오르고 신용카드등 금융 관련 연체는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환율 급등이 주요 원인중 하나였으며 2004년 카드대란은 무분별한 카드 발급에 따른 카드 연체 급증으로 발생했는데 최근엔 이 두가지가 다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유로존 위기가 잘 봉합되지않고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한국경제는 큰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 심상치 않은 환율 급등
지난주 한때 1,116.4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금요일인 지난 16일엔 3.90원 내린 1,112.50원으로 마감돼 닷새만에 오름세를 멈췄지만 유럽 재정위기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반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지난주 나흘 연속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로 빠져든다면 환율이 최고 1천600원까지 치솟아 1997년 환란이후 최대 위기가 을 것이라는 증권가 전망이 잇따라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로 인한 국내 기업과 가계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최근 물가가 4%이상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환율 급등으로 수입물가가 오른다면 가계의 구매력은 급속도로 나빠져 경기가 급랭하게 될수 밖에 없다.
우선 보유자금이 넉넉지 않고 환헤지 능력이 부족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최근 설문조사에서 중소기업 37.3%가 '환율 변동에 대해 평소 아무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답해 환율 위험에 무방비로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매달 중소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경영애로사항을 조사하면 '원자재 가격 부담'이 수위를 차지하는데 어려움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며 "정부는 환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곡물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의 어려움도 이에 못지 않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곡물 원재료를 수입하는 CJ제일제당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연간 30억여원의 손해를 보게 돼 이번 환율급등 사태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설탕 원료인 원당 가격이 5월부터 반등해 2009년 초 파운드당 12~13센트에서 현재 파운드당 30센트 선까지 치솟아 경영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항공업계는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수입 증가보다 기름값 등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비용 증가가 훨씬 커 이마를 찌푸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대한항공은 640억여원, 아시아나항공은 76억여원의 연간 손실이 각각 발생할 것으로 전망돼 이들 기업은 환율과 유가 변동을 예의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유업계도 환율이 오르면 원유 수입가격도 오르게 돼 경영 부담이 커진다.
최근 국제 석유제품 가격의 큰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국내 정유사의 세전 공급가격이 890원대에서 9월 첫째주 949.65원으로 대폭 상승한 것도 환율 급등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소기업이나 내수중심 기업들과 달리 수출 대기업들은 환율 상승이 오히려 실적 개선의 원동력이 될 수 있어 최근의 환율 급등세가 나쁘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기준환율을 1천100원으로 잡았으나 최근 환율이 이를 상회하면서 매출도 환율 상승폭에 비례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이 10원 오르면 현대차는 매출이 1천200억원 증가하고 기아차는 800억원 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해외 선박 수주가 많은 조선업계는 환헤지를 통해 수주 시점에 환율을 고정시키기 때문에 환율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면서 지속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앞으로 수주할 선박의 수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업계도 해외 사업장에서 달러와 유로, 현지 화폐를 골고루 사용해 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다 공사진척 상황에 따라 기성금을 장기간에 걸쳐 나눠받기 때문에 중간에 환율이 오르면 기성금을 원화로 환전할 때 오히려 약간의 환차익이 생길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환율이 급등할 경우 가계의 실질소득이 감소해 내수부문은 가라앉을수 밖에 없고 또 환율 급등원인이 유로존 붕괴때문이라면 수출 역시 타격을 받을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환율 급등은 모두에게 피해가 갈수 밖에 없다.
◆ 제1금융권 연체자 급증
올들어 제1금융권 연체자도 20만명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높아졌고, 빚을 못 갚는 중소기업들도 급증하고 있다. 대출자들이 경기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의 대출 억제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연체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어서 내년에는 `연체대란'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금융권 및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91만9천570명이던 금융기관 연체자 수는 올해 6월 109만8천878명으로 반년 새 무려 17만9천408명(19.5%)이나 늘었다.
이는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후 연체자 수가 지속적으로 줄던 추세가 처음으로 반전된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2008년 말 121만4천731명에 달했던 연체자 수는 2009년 말 103만2천630명으로 일년 새 17만명 가까이 줄었다. 이어 지난해에는 13만명 가량 또 줄어들었다.
일부 시중은행의 연체율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높아진 상황이다.
금융위기 후 우리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2009년 3월 말 0.6%로 최고조에 달했다가 지난해 말 0.47%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급격하게 높아져 7월 말 연체율이 무려 0.77%에 달한다.
하나은행도 신용대출의 연체율이 금융위기 수준으로 높아졌다. 올해 7월 말 신용대출 연체율이 0.88%로 금융위기 후 최고치였던 2009년 6월 말 0.97%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체율이 본격적으로 높아졌다. 가계대출 연체율이 금융위기 이후 1%를 넘은 적이 없었으나, 올해 6월 말 연체율이 0.96%로 1% 턱밑에 이르렀다.
빚을 못 갚기는 개인고객뿐 아니라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신용보증기금이 빚을 갚지 못한 기업 대신 대출금을 갚아준 비율(대위변제율)은 올해 8월 말 전체 보증금 대비 3.6%까지 높아졌다. 6월 말에는 4.0%까지 치솟았었다.
2009년 6월 말 4.2%였던 대위변제율은 2009년 말 3.4%, 지난해 말 3.2%로 낮아졌다가 올해 들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이는 올 들어 급증하고 있는 개인 연체자와 같은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을 정도로 물가가 급등하자 한국은행은 지난해 7월부터 다섯 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렸다. 정부도 더 이상 재정적자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재정 건전화에 나섰다.
이는 가계와 기업의 부담으로 직결돼 결국 연체율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 것.
문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더 이상 공격적인 경기확장책을 쓰기 힘든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2분기 들어 급전직하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성장률도 0.9%로 곤두박질쳤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기업 자금사정도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 대출 연체율이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줄이면 빚을 내 이자를 갚거나 생활자금으로 쓰던 사람들의 대출 길도 막히게 된다"며 "현재로서는 향후 연체율이 낮아질 가능성보다는 높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 카드론ㆍ현금서비스 연체율 동반상승
신용카드사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연체율도 동반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이성헌(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6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론 연체율은 2.3%로 지난해말(2.0%)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회사별로는 신한카드의 카드론 연체율이 3.6%로 가장 높았고, 삼성카드(3.4%), 하나SK카드(2.2%), 롯데카드(1.5%), KB국민카드(1.2%), 현대카드(0.9%) 등의 순이었다.
카드론과 함께 현금서비스 연체율도 동반상승했다.
전업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연체율은 6월말 현재 2.5%로 지난해말(2.3%)보다 0.2%포인트 올라갔으며 전업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잔액은 9조4천770억원으로 지난해말(9조2천827억원)보다 1천943억원 증가했다.
◆소비자물가 4%대 고공행진
올들어 소비자물가는 4.5% 올라 정부의 연간 물가 억제 목표치인 4.0%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8월에는 5.3%가 급등, 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국제 유가와 국제 원자재가격이 치솟은데다 구제역 여파로 인한 축산물 및 관련제품 가격 급등, 이상기후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등에서 비롯되고 있다.
무엇보다 추세적 물가상승 압력을 대변하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4%대에 진입하며 28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올정부는 올 9월부터 물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이미 환율이 급등하고 있어 전문가들은 물가불안이 4분기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서민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면서 52개 품목을 선정해 만든 이른바 ‘MB물가’는 최근 5.5%나 급등, 오히려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추월해 정부를 당혹케 했다.
최근의 물가와 환율의 급등은 소비자들의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가뜩이나 늘고있는 금융 연체를 부채질해 금융권의 부실까지 초래할수 밖에 없다.
결국 금융, 기업, 가계 세부문의 침체는 곧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점에서 정부의 선제적인 대책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