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사면' 문제가 정부 안팎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격인 일부 그룹은 총수 공백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현재 총수가 수감중이거나 재판에 계류중인 그룹들은 투자 위축으로 장기성장동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재벌 총수에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해당 그룹들은 총수의 경영복귀를 계속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총수가 수감되거나 재판에 휘말려 있는 곳은 SK, CJ, 효성 등 10여곳이다.
이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수감된 지 벌써 600일이 넘었다. 지난해 1월 최태원 회장이 구속 수감 된 이후 SK그룹은 국내외 투자에 한계를 드러냈다.
단적으로 SK그룹은 지난해 SK E&S와 SK텔레콤이 각각 추진하던 STX에너지·ADT캡스 인수 합병을 모두 중도 포기했다. 국내 2위 보안 업체인 ADT캡스는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칼라일이 인수했다. 올해 7월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방한했을 때 10년 인연을 맺고 있는 최 회장의 부재 탓에 이렇다 할 투자나 인수 합병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공백으로 지난해 투자계획의 80% 수준인 2조 6000억 원을 투자하는 데 그쳤고, 올해 상반기에는 당초 계획했던 투자액 1조3700억원 중 4800억원을 집행하지 못했다. 지난 1월 CJ대한통운은 충청 지역에 물류 터미널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2천억 원을 투자하려다 보류했다. 앞서 CJ대한통운은 지난해 하반기 미국과 인도의 물류 업체를 인수하려다가 협상 막바지에 포기했다.
CJ그룹은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지난 29일 군산과 목포 지역에 항만과 친환경 하역시설 개발을 발표하며 1천860억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CJ대한통운이 군산항과 목포신항에 현대식 석탄하역 전용부두를 건설하기로 한 것. 이를 통해 2천195명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제공되고 3천53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회사 측은 추산했다.
조석래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효성그룹도 오너의 공백으로 경영의사 결정이 지연되거나 신규 사업 투자 부진 등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 구속 수감중인 기업인에 대한 사면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어 총수 부재 사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케이스라면 (기업인에 대한 사면과 가석방)을 일부러 차단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맞장구를 쳤다.
최 부총리는 지난 25일 "기업인들도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의) 투자 지연 때문에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데 법을 집행하는 법무장관이 그런 지적을 해준 것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야권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비해 청와대와 여당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꺼리고 있어 사면론이 실현되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윤주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