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주변에 위안둥(遠東), 궈타이(國泰)등을 비롯한 유명 백화점들이 불황을 모르고 연중무휴로 흥청댈뿐만 아니라 수많은 극장들까지 운집해 있어 젊은이들의 발길을 불러 세우는 그런 곳이다. 굳이 1980년대말의 서울과 비교한다면 명동과 비교될만하다.
이 거리에서 단연 특이한 존재는 누가 뭐라 해도 시먼 시장을 중심으로 한 뒷골목이 아닌가 싶다. 별미를 자랑하는 값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는데다 식도락을 즐기려는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연중무휴 끊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시먼딩의 명소로 자리잡은 곳이다.
문호는 오랜만에 시먼딩의 번화한 모습을 대하자 불현듯 성진과 찾았던 맥주 홀 완리창청을 떠올렸다.
평소에 가뭄에 콩나듯 해결한 배설 문제를 무려 두 번씩이나 경험하도록 만든 현장이 지척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가슴도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는 하지만 곧 머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주머니 사정으로 볼때 지금의 그에게 완리창청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문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에 부딪치는 인파를 헤집고 둥야 호텔 로비에 들어선 것은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광평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양인으로서는 제법 큰 키를 가진 그는 운동으로 단련된 딱 벌어진 근육질의 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확 눈길을 끌만한 꽃미남같은 준수한 용모는 아니지만 중국인들이 최고의 남자로 꼽는 이른바 열혈남아(熱血男兒)형의 그런 호감이 가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시먼딩의 비밀 호스트 바등에서 한때 그에게 군침을 삼키고 영입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소문은 괜한 것이 아닌게 분명했다.
"아 광평! 미안해, 좀 늦었어"
광평을 발견한 문호가 미안함을 표했다. 화려한 상들리에의 불빛을 손으로 가리면서였다.
"괜찮아, 그건 그렇고 우선 나가지. 여기 계속 있어봐야 눈 버리기 딱 좋으니까"
광평이 말을 마치기 바쁘게 문호를 끌고 호텔 밖으로 나갔다. 그는 천성적으로 호사스러움을 싫어했다.
그들은 호텔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시먼 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네온사인 불빛이 그들의 그림자를 길게 잡아끌어 당기고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은 좌판이 무질서하게 펼쳐진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곧 간판도 닳지 않은 허름한 만두집 하나가 나왔다. 광평은 평소 안면이 있는지 서슴지 않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문호도 습관적으로 그를 따랐다.
밖에서와는 달리 안은 그래도 제법 깨끗한 편이었다. 중국인들은 원래 외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온 문호에게는 의외의 집이었다. 조금 낡긴 해도 깨끗하게 치워진 나무 식탁과 방금 삶아낸 걱처럼 보이는 주방 바로 앞 진열대에 수북이 쌓인 먹음직스러운 만두는 안 그래도 간절했던 문호의 술 생각을 한층 더 부추겨주고 있었다.
"만두 두 접시하고 타이완 백주 다섯 병 주세요"
자칭 애국자인 광평이 칼스버그나 버드와이저 같은 수입품은 일부러 제쳐두고 국산품 맥주인 타이완 맥주를 주문했다. 40세는 넘은 것으로 보이는 갸름한 미인형의 얼굴을 한 주인 아주머니는 광평이 주문한 만두와 맥주를 바로 가져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논문은 잘 돼 가나, 문호?"
맥주를 한잔이나 완전히 다 마셨을까, 광평이 갑자기 문호의 아픈 곳을 찔렀다.
"일년 정도면 될 걸로 보는데 글쎄 잘 모르겠어. 별 차질이 없으면 되겠지, 뭐"
문호는 그러나 별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도 않고 바로 말을 받았다. 문호와 광평 둘의 관계는 무슨 말을 해도 다 되는 그런 사이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끝나면 바로 돌아갈 계획인가?"
광평은 더욱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친구와의 국적을 초월한 우정도 이젠 이별이 멀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