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 식은 죽 먹기다.
② 세상에서 제일 큰 떡은?
▲ 남의 떡이다.
③ 인생 역전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 로또복권을 사는 일이다(몇 천원으로 인생 역전을 꿈꾼다. 혹시나 하고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나로 끝난다).
◆ 인생 역전의 꿈과 인생 여전한 사람들
로또복권이 만든 유행어가 있으니 바로 인생 역전이다. 추첨일이 가까워지면 복권 판매소 앞에 줄을 서야 할 정도다. 1등 당첨자가 나온 곳은 당첨 기운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로또복권이 불티나게 팔린다.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
인생은 타인과의 경기가 아니다.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자기와의 대화이다. 복권 광고의 문구처럼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 복권을 사는 사람은 누군가와 비교해 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아니겠는가?
주말마다 인생 역전을 노리는 복권맨 중에서 실제로 인생을 역전시키는 사람은 매회 한두 명 나타난다. 나머지 사람들의 인생은 지난 주와 비교해 다를 바가 없이 여전하다. '인생 역전'이 아니라 '인생 여전'이다. 인생 역전을 꿈꾸지만 여전히 인생을 역전에서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액수의 당첨금이 걸린 복권이 가진 장점도 있다.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에서의 달콤한 등불이기도 하고 사막의 신기루처럼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희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갑 속에 든 복권 한 장이 일주일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라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로또복권은 번호를 선택할 수 있는 맞춤식 복권이다. 여섯 개의 숫자를 맞춰 1등에 당첨되면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금액인 수십억원의 당첨금을 받는다. 꿈에 숫자가 보이거나 좋은 꿈을 꾸면 로또복권을 사는, 자나깨나 인생 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 복권과 신기루의 같은 점과 다른 점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현실에서의 복권과 사막에서의 신기루는 닮았다. 다른 점은 복권은 비용이 들지만 신기루는 돈이 들지 않는다. 신기루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더라도 효용면에서 차이가 없다. 복권은 1등 당첨자가 많으면 당첨금을 나눠야 하므로 줄어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복권을 산 모든 사람이 같은 번호를 6개 선택하고 그 번호가 6개 숫자로 뽑히면 복권을 구입한 액수만큼도 돌려받지 못한다. 추첨 방송이 진행될 때 수백만명이 대한민국을 외치겠지만 당첨금의 액수를 알고는 화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기루는 실재하지 않지만 눈에는 보인다. 인생 역전의 복권 1등 당첨자는 매주 나타나지만 나에게는 너무 먼 확률이다.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분명 있지만 현실적인 1등 당첨 확률은 영에 가깝다. 인생 역전의 주인공인 1등은 매주 발표되지만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없지만 보이는 것이 신기루이고, 있지만 없는 것이 인생 역전의 복권 1등 당첨이다.
복권은 사행심을 조장하기는 하지만 물론 순기능도 있다. 수익금의 일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 사업에 사용된다. 복권을 레저로 생각해 되면 좋고 꽝 되면 사회에 환원했다고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이 즐겁다. 인생 역전의 기회로 여기고 벌이에 비해 매회 과다하게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 지렛대와 보상에 관한 세 그룹의 쥐 이야기
돈과 집값과 사람도 몰리는 곳으로 쏠리는 쏠림 현상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는 추세다. 인생 역전의 기회가 로또복권 1등 아니면 없다는 복권파도 있다.
스탠리 밀그램 박사가 실험한 세 그룹의 감금된 쥐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람을 쥐에 비유해 유쾌하지 않지만 본인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재미로 한 번 생각해 보자. 지렛대와 보상이 상징하는 것을 다양하게 적용해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의 쥐들은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맛있는 알약을 보상으로 받는다. 두 번째 그룹의 쥐들은 지렛대를 누를 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세 번째 그룹의 쥐들은 지렛대를 누를 때 간헐적(보상이 정기적일 때도 있고 부정기적일 때도 있다)으로 알약을 받는다.
감금된 쥐들은 맛있는 알약의 보상을 기대하며 지렛대를 눌러댄다. 얼마 후 쥐들에게 알약 공급을 중단했다. 세 그룹의 쥐들에게 각각 어떤 일이 일어날까?
원래 맛있는 알약을 받지 않았던 두 번째 그룹의 쥐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 변화가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꼬박꼬박 보상을 받았던 첫 번째 그룹의 쥐들은 지렛대를 열심히 눌러도 알약이 나오지 않자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지렛대 누르는 것을 중단했다.
간헐적으로 알약을 받았던 세 번째 그룹의 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알약을 받기 위해 계속 지렛대를 누르고 또 눌렀다. 첫 번째 그룹의 쥐들이 재미있게 놀 때도 알약을 보상 받기 위해 지렛대를 열심히 지렛대를 눌렀다. 마침내 쥐들이 지렛대 누르기를 중단한 것은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였다.
* 과식은 영양실조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을 병들게 한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 도리스 메르틴의 <완벽한 것보다 좋은 것이 낫다> 중에서(에코비즈, 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