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부들이 교회의 정원을 파헤치다가 나무관 하나를 발견했다. 관 뚜껑을 열자, 호화로운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의 미라가 나왔다. 공기가 닿으면서 풍화작용을 일으켜 미라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귀부인은 드레스 속에 정조대를 차고 있었다. 정조대는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골반을 두르는 가느다란 띠도 있었다. 금으로 세공된 훌륭한 정조대였다.
귀부인의 정조대는 관에 넣기 전에 남편이 채운 것으로 추정되었다. 질투심 많은 남편이 아내가 죽어서도 바람을 피우지 못하도록 채웠다는 것이다. <뜻밖의 세계사, 기류 마사오 지음>
그렇지만, 성도착자들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소위 '네크로필리아' 증세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성이 사망할 경우 곧바로 관에 넣지 않고, 며칠 동안 방치해 시체가 부패할 때를 기다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야 성도착자들이 혹시 훔쳐가는 일이 있더라도 안전(?)했다는 것이다.
사진은 중세 유럽의 기사들이 십자군 원정 때 아내에게 채웠던 정조대 가운데 하나다. 다리를 아예 벌리지 못하도록 단단한 쇠로 만들어 채웠다. 혹시 원정 중에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당시 기사들 가운데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자물쇠를 채운 후 열쇠를 본인이 갖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믿을 만한 사람에게 열쇠를 맡기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전사 또는 병사 등으로 인해 돌아 오지 못할 경우, 열쇠 보관자가 정조대를 풀어주도록 한 것이다. 비교적 인간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열쇠를 가지고 가버리면,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죽을 때까지 정조대를 차고 있어야 했다. 미라로 발견된 귀부인처럼 죽어서도 차고 있어야 했다.
물론, 자물쇠 수리공에게 찾아가서 정조대를 해체하는 사례도 적지는 않았다. 남편이 떠나자마자 자물쇠 수리공부터 찾아가는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쇠로 제작된 정조대는 불편한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너무 차가웠다. 맨살에 닿는 쇠붙이 때문이다. 덕분에 정조대를 찬 여성들은 겨울철이 되면 감기를 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